일상의 인문학 - 넓게 읽고 깊이 생각하기
장석주 지음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알라딘 서재 말고 외부에서 서평 블로그를 운영한지 이제 3년이 조금 넘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어떤 일로 인해 만들었던 블로그가 내 첫번째 블로그다. 처음에는 일기나 사진, 최근에 본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 같은 잡담을 주로 올렸다. 그러다가 점점 서평의 비중이 늘어서 3년 전에 아예 서평 위주의 블로그를 따로 만들었다. 그 블로그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다.

 

서평 블로그라고 해도, 읽은 책에 대해 쓴 글을 보통 서평이라고 해서 서평 블로그지, 엄밀히 말해 내가 쓰는 글은 서평이 아니다. 사전에서 서평의 정확한 뜻을 찾아보니 '서적에 대한 비평과 평가, 주로 해당 서적의 내용에 관계된 전문가가 집필한다'고 나오는데, 내가 쓴 글은 비평도, 평가도 아니요, 더군다나 나는 어느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다. 그러니 지극히 비전문적인 사람의 시선에서 보고 느낀 감상을 적은 글이라고 할 수 밖에. 학교 다닐 때 쓰던 독후감의 연장이라고 하면 되려나.

 

그러면서 굳이 서평 블로거이고자 하는 이유는 그나마 내가 세상과 소통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방식이 책이고 글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고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아날로그 매체인 책과 느림의 예술인 글을 좋아하면 아웃사이더 취급 받기 딱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책을 읽고 글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 주변에는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없어서 답답한 사람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창에 책 제목을 검색했을 때 우연히 내 블로그가 눈에 띄어 내 글을 읽게 되고, 이로 인해 아주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공감에 대한 갈증이 해소된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서평 쓰기는 메마른 작업이다. 공력은 많이 들지만 청고한 인격을 만드는 데도, 지식의 성채를 짓는 데도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그건 사랑 없는 섹스는 아닐지언정 출산이 배제된 섹스와 닮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p.107 서평, 그 사소한 정치, [일상의 인문학])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문장노동자인 장석주의 서평집 [일상의 인문학]을 읽으면서 나에게 서평이란 어떤 의미인지 되짚어 보았다. 장석주는 1955년생으로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및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입상하면서 시인 겸 비평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출판사 대표 겸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일상의 인문학]은 저자가 2010년 3월부터 세계일보에 [장석주 시인의 인문학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원고를 모아서 만든 책이다.

 

일단 본격적인 인문학 서적이 아니라 저자가 읽은 인문학 서적에 대한 서평 칼럼이라서 읽기에 쉬웠다. 저자의 글도 수려하고, 롤랑 바르트, 발터 벤야민 등 유명한 학자부터 알랭 드 보통, 김훈, 한강 등 최근 작가까지 다양한 저자들의 책이 망라된 점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저자의 책을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대학교 1학년 인문교양 시간에 배운 롤랑 바르트, 20세기 사회과학을 설명하는 데 있어 빼놓아서는 안 되는 인물인 미셸 푸코, 자크 아탈리, 발터 벤야민, 지그문트 바우만 등 평소 이름과 주요 사상만 알았지, 정작 그들이 쓴 책을 읽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장석주 저자의 평을 먼저 읽으니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면 좋을지도 알겠다. 가장 좋은 서평은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서평이라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장석주 저자의 서평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먹고사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인문학은 사람이 개별자에서 벗어나 나와 세계를 총체적으로 보는 것, 즉 사람과 문화, 그것을 둘러싼 우주와 생명 세계, 그 현상과 본질을 깊이 보게 한다. 필요와 욕망은 가깝고 근원은 멀다. 통찰이란 목전의 필요와 욕망을 넘어서서 근원을 꿰어 봄을 뜻한다. 무엇보다도 인문학의 큰 미덕은 창의성, 통찰력, 소통의 힘을 키워 준다는 점이다. 현실이 던적스럽고 갈 길이 흐릿할 때 인문학은 필요하다. (p.5 일상을 떠난 인문학은 없다, [일상의 인문학])

 

 

내친 김에 이 책에 소개된 책 몇 권을 구입했다. 저자의 말대로 '서평 쓰기는 메마른 작업'이지만, '현실이 던적스럽고 갈 길이 흐릿할 때' 책만한 등대가 또 없다. 그의 서평이 나에게 그동안 몰랐던 책으로의 길을 터준 것처럼, 나의 서평도 누군가에게 불빛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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