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1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착수 미생 1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바둑은 흑과 백의 전쟁이고, 몇 번의 고비를 넘겨야 겨우 마칠 수 있는 한 판의 인생이다. 바둑이 전쟁이고, 인생이라면 바둑을 회사 생활에, 그리고 인생에 비유한 책이 나온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2012년 1월 20일 Daum 만화속세상에 첫선을 보인 이후 최장기간 평점 1위를 고수 중인 웹툰을 단행본으로 만든 만화책 <미생 -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가 바로 그런 책이다. 연재 기간 내내 ‘만화가 아닌 인생 교과서’, ‘직장생활의 교본’, ‘샐러리맨 만화의 진리’ 등으로 불리며 인터넷 상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은 <미생>은 단행본으로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나는 웹툰으로는 보지 못하고 이번에 단행본으로 1,2권을 만났는데 왜 그렇게 큰 인기를 끌었는지 읽으면서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한 바둑 만화, 샐러리맨 만화가 아니라 어느 누리꾼의 말대로 '인생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미생>은 열한 살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프로기사만을 목표로 살아가던 청년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하고 회사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면서 겪는 일을 다루고 있다. 장그래는 현대를 사는 청춘들의 표상이다. 요즘 세대들이 흔히 바둑을 두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욕심 어린 기대로 천재 소리를 들으며 (공부든 무엇이든) 한우물만 파다가,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거나 나이가 들었으니 어서 한 사람 몫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부담 어린 시선을 못 이기고 재능이 채 익기도 전에 떠밀리듯 사회로 나온다. 그렇게 설익은 상태로 맞닥뜨린 사회가, 사회생활이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위로해주는 어른은 책 속에나 있다.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이 순식간에 경쟁자가 되어 뒤통수를 갈기는 건, 지난 주말 웃으면서 본 TV 오디션 프로그램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시종일관 무심한 장그래의 표정을 보며 나는 젊은 세대들의 '채 피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자신에 대한 무력감을 읽을 수 있었다.

 

1,2권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슴 아팠던 장면은 장그래가 회사에서 쪽잠을 자다가 어린 시절의 우상인 조훈현, 이세돌 같은 바둑 기사들을 꿈 속에서 만나는 씬이다. 아주 짧은 씬이지만, 그 씬에서 나는 장그래가 겉으로는 담담한 척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자기도 그들처럼 시대를 풍미한 바둑 기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 꿈을 못 이루고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샐러리맨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샐러리맨을 꿈꾸고, 회사 다니는 게 평생의 소원이라서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른 꿈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샐러리맨이 되고,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이렇게 무의식까지 흔들며 괴롭힌다면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장그래가 부디 회사 생활을 슬기롭게 해낸 다음 바둑 기사의 꿈도 꼭 이루었으면 좋겠다.


<미생>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은 바둑이라는 두뇌 게임과, 게임보다 더 치열하고 경쟁적인 직장 생활 스토리를 접목했다는 점이다. 사실 직장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만화에서도 많이 볼 수 있고, 바둑에 관한 만화도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접목하니 각각의 특징이 비슷하게도 보이고 다르게도 보이면서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각 편 초반에 나오는 조훈현 9단과 녜웨이핑 9단의 1989년 9월 전설의 매치의 진행 과정은 바둑을 전혀 모르는 내 눈에도 너무나도 흥미롭게 보여서 바둑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미생이라는 제목도 실은 바둑에서 쓰는 말이라고 한다. 바둑에서는 두 집을 만드는 것을 ‘완생(完生)’이라고 말하고, 그 전에는 모두 ‘미생(未生)’ 즉,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말, 상대로부터 공격받을 여지가 있는 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작가는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현대의 직장생활을 완생이 아닌 미생으로 보았고, 주인공 장그래를 통해 월급과 승진만이 아닌 직장생활 자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하는데, 책 내용에 딱 맞는 제목인 것 같다. 아직까지는 미생인 장그래가 앞으로 어떤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며 완생에 다다르는지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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