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의 아이들 - 재난이 휩쓸고 갈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모리 겐 지음, 이선미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작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저 일본에서 흔히 있는, 진도 1,2 정도의 약한 지진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내 언론과 일본 방송, 그리고 인터넷과 SNS 서비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을 연달아 접하면서 엄청난 재해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력 부족으로 인한 정전과 피재지 난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접하면서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닌데도 안타깝고 슬펐다. 얼마 후 일본 사회는 복구 작업을 개시했고, 시민들은 피재지에 지원 물자를 보내고 솔선하여 절전 운동을 하면서 국난 극복을 위해 일치 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잘 마무리 되고 있다고, 국내에는 거기까지만 보도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고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꾸준히 일본 사회를 관찰하고 있는 내가 느끼는 것은 조금 달랐다. 1년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일본 사회가 그 때의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무서운 재앙 앞에서 일본 사회는 감정을 절제하고 변화나 새로운 시도를 삼가는 풍조가 더욱 만연해졌다. 안 그래도 경기 침체와 고령화 등으로 침체되어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번 쓰나미가 일본 사회의 고삐를 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쓰나미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 책 <쓰나미의 아이들>의 저자 모리 켄은 일본을 대표하는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쓰나미 이후 피재지의 아이들로부터 작문을 받아 아이들의 눈에 이번 재난이 어떻게 비쳐졌는지,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했다. 그의 시도는 일본 사회 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피재지 밖의 일본인들에게는 감동과 경각심을, 그리고 피재지 주민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 일반인보다도 훨씬 글을 잘 쓰는 저널리스트가 굳이 어린이들에게 글을 쓰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널리스트라면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아이들이 쓴 글보다도 훨씬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책을 읽어보니 저자가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1933년 요시무라 아키라가 쓴 <산리쿠해안 대지진해일>이라는 책 한 권이다. 이 책에서 故 요시무라는 1933년 3월에 일어난 소화 대지진해일 때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의 글을 모아 소개했다. 그 때의 해일은 이번 쓰나미의 20세기판, 소화(쇼와)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비슷한 점이 많았다. 3월에 일어났다는 점을 비롯해 발생 지역도 겹친다. 저자는 이번 쓰나미가 유례가 없는 일이 아니고 불과 몇 십년 전에 일어났던 재난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때의 재난을 극복하고 다시 사람들이 마을을 부흥시켰다는 점에 두 번 놀랐다. 그 중심에는 앞으로 미래를 짊어지고 갈 아이들이 있다는 것, 거기에 저자는 주목했다.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훨씬 민감하고 섬세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글은 전문 기자나 작가가 쓴 세련되고 정제된 글에 비하면 투박하지만 훨씬 안타깝고 애잔하게 다가왔다. 하루 사이에 부모를 잃고, 형제와 친구들을 잃고, 집과 학교가 부서지고, 아끼는 물건들이 망가지고... 성인인 나도 소중한 사람들, 소중한 것들이 없어지고 부서진다는 생각을 하면 그저 두렵고 무서운데 아이들의 여린 마음에는 그 때의 기억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여린 아이들이 어른들보다도 훨씬 빨리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일어섰다는 점이다. 먼저 아이들의 글을 받은 저자는 추후 취재를 통해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쓴 이야기를 보완했다. 그 때 저자가 만난 어른들 중에는 갑작스럽게 닥친 삶의 고비 앞에 넋을 잃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안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역시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위기 시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인 어른들도 있었다. 자기 형편도 어려우면서 피재지를 수습하고 임시 거처를 통솔하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부모에 조부모까지 잃고 고아가 된 조카들을 돌보는 고모, 크게 놀랐을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산리쿠해안 대지진해일>을 구해 읽을 정도로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어머니 등...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일본 사회가 큰 재난 앞에서도 의연하고 겸허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글인 마키노 아이의 <쓰나미>는 이 책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마키노 아이는 1933년 산리쿠해안 대지진해일 당시 생존하고 이번 쓰나미에도 해를 입지 않은, 그러니까 두 번이나 쓰나미를 겪고도 살아 남은 아흔 살 가까운 할머니다. 나는 차마 쓰나미를 두 번이나 겪은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하고, 글 처음에 나오는 할머니 사진을 보고 잘못 실린 것이거나 다른 사연이 있는 줄만 알았다. 할머니는 1933년 쓰나미 때 가족 모두를 잃고 천애고아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큰 고통과 시련을 준 고향에서 가족을 꾸리고 살고 계신다. 어떤 시련이 와도 고향과 가족에 대한 마음은 파도가 휩쓸 수 없고, 살겠다는 의지는 재난이 꺾지 못한다는 것을 이 분을 통해 절절히 느꼈다. 그래서 일본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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