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사장으로 산다는 것 (개정판)
서광원 지음 / 흐름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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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사장' 하면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재벌을 떠올렸다. 부와 명예, 무엇 하나 아쉬울 것이 없고, 서민들은 꿈조차 꿀 수 없는 화려한 생활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장 하면 막연히 돈이 많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월급쟁이가 되는 것보다 사장이 되는 게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 말씀은 달랐다. 돌아가신 우리 외할아버지는 자영업을 하셨는데, '명색이 사장인데' 하는 마음에 겉보기에는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셨지만, 실제로는 식구들 먹일 것도 없이 직원들 월급 주는 데 급급하고, 밤낮없이 일을 하고 회사 걱정을 하느라 몸도 많이 상하셨다. 그래서 기복이 심하고 불안정한 사장이 되느니, 적어도 월급 받을 생각만 하면 되는 월급쟁이가 훨씬 낫다고 누누히 강조하시곤 했다.

 

그렇지만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서 어릴 때는 어머니 말씀을 100%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 아버지는 월급쟁이라서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적은 월급을 아껴 쓰고 쪼개 쓰느라 늘 여유가 없었는데,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시는 친구들을 보면 늘 여유 있게 용돈을 쓰는 것 같았다. 그 때마다 아버지가 사장이면, 아니 내가 사장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아르바이트나 인턴으로 일하면서 실제로 본 사장님들의 모습은 '드라마 속 사장들'과 퍽 다른 모습이었다. 미디어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하고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사장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규모가 작은 사업체의 경우 하루만 쉬어도 경쟁에서 뒤처지고, 직원 한 사람이 있고 없고, 그 직원이 일을 제대로 하고 안 하고에 따라 실적이 바로 달라지다보니 사장님이 출퇴근 시간도 없이 일하시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얼마전 <힐링캠프>에 나온 안철수 교수님도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직원들 월급 못 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사장이라는 자리가 밖에서 보는 것처럼 쉽고 편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깨닫고 있다.

 

<사장이 차마 말하지 못한 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장들의 고충과 애환이 담긴 책이다. 저자 서광원은 1991년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1997년부터 6년 동안 인터넷 벤처기업 등을 설립하여 운영한 경험이 있고, 2003년부터는 이코노미스트 지의 경영전문기자로 활동해왔다. 저자는 기업체를 운영할 당시 사장이라는 자리가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마냥 쉽고 편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사장의 심리에 관한 전문 분석서를 써보기로 기획했고, 이후 기자로서 국내 기업 CEO를 심층 인터뷰하며 사장의 심리에 관한 조사와 분석을 계속해왔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의 결정체이자, '사장의 심리에 관한 완전 분석서' 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나온 책은 2005년에 간행된 초판의 개정판이다. 초판은 무려 20만 명에 이르는 독자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와 큰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월든> 같은 스테디 셀러가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 되는 것은 많이 봐왔지만, 국내 경제경영서가, 그것도 7년이라는 짧은 텀을 두고 개정판이 나온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의 인기가 높았고, 양장본으로 소장하고 싶은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책은 사장의 심리에 관한 완전 분석서 답게, 사장의 심리에 대해 이전의 책과는 다른 접근을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 등에서 그려지는 사장이나 CEO의 모습은 적극적이고 도전적이며 카리스마가 넘치는, '정형화된' 모습인 경우가 많다. 위기가 몰려와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직원들에게는 늘 당당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마치 드라마 속에나 나올 법한 리더의 모습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디 그런가. 직원이 보기에 아쉽고 서운한 행동을 보이는 사장님들 참 많다. 같은 사장, CEO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멋진 사장의 모습이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사장도 때로는 힘이 들고, 위기에 몰리면 겁도 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우유부단해지기도 하는 '사람'인데, 사람들은 사장 하면 모두들 사람이 아닌 영웅의 모습을 기대하니 말이다.

 

사실 나도 사장 하면 일반 직원들보다 대담하고 진취적인 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상상과 다른 사장님을 만나면 실망하게 되고 때로는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사장도 직원과 똑같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직원이라는 자리도 힘들지만, 직원은 제 한 몸 건사하면 되는 반면 사장은 전 직원은 물론 직원의 식구까지 챙겨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진 사람이다. 직원은 월급 못 받으면 어쩌나, 회식 안 하나, 야유회 안 가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사장은 월급을 줄 걱정을 해야 하고, 회식 한 번, 야유회 한 번 할 때마다 실적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계산하고 판단해야 하는 자리다. 이렇게 보면 사장이 직원보다 걱정이 더 많고 고민이 더 많으면 많았지, 결코 더 쉬운 자리는 아닌 게 맞다.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가 '사내 청소부는 실패하면 변명과 핑계를 대도 되지만, 부사장 위의 직급부터는 실패하면 변명과 핑계를 댈 수 없다'는 말로 CEO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언급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사장뿐 아니라 직원들도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장이 직원과 똑같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장의 마음을 직원으 완전히 헤아리기란 어려운 일이다.그런데 직원의 입장에서만 사장을 이해하려고 들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잘못하면 오해만 생길 수 있다. 직원이 보기에 불합리한 처사가 조직 전체를 통솔하는 사장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고, 직원이 보지 못하는 것을 사장은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조건 '우리 사장님은 꽉 막혔다, 권위적이다' 라고 비난만 하면 조직 차원에서는 물론, 직원 개인의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사장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해하려는 차원으로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회사 생활, 특히 사장과의 의사소통에 문제를 겪고 있는 직원들에게도 이 책을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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