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어나 어디로 향할 것인가 - 문제는 정책이다
스테판 에셀 & 에드가 모랭 지음, 장소미 옮김 / 푸른숲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딱 작년 이맘 때 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읽었다. 그는 청년 시절 나치에 대항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으며, 전후에는 1948년 발표된 '세계인권선언' 작성에 기여했다. 이런 그의 이력은 살아있는 현대사나 다름없다. 그런 그가 보기에 21세기 프랑스, 그리고 전 세계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분노하라>라는,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가진 글을 썼고, 이 글이 담긴 책은 이 분야의 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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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분노할 것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이번 분노의 대상은 바로 '세계화'. 문명은 원래 어느 한 곳에 정체하지 않고 흘러다니며 확산되는 속성을 가졌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교통, 기술의 발전과 탈냉전 등으로 인해 세계는 전례 없는 속도로 연결되고 있다. 세계화의 장점, 물론 있다. 하지만 생태계 파괴, 금융 투기, 국수주의 등 부작용도 낳았다. 또한 이 세계화라는 것은 세계 각국의 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서구의, 그것도 미국 한 나라의 스타일로 획일화 된다는 점도 문제다.


자국 문화를 수호하는 데 어느 나라보다도 열심인 프랑스도 이 세계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테러, 실업난으로 인한 소요 등 몇몇 굵직한 소식들은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농촌공동화, 다문화 가정 문제, 청년실업난 등 프랑스와 똑같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이데올로기 행세를 하는 경제자유주의는 실패한 시스템임이 밝혀졌다. 자유방임은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풍요보다는 빈곤을 초래했다. 경제자유주의 시스템 하의 세계화, 개발, 서구화(똑같은 현상의 세 가지 이름)는 인류의 사활이 걸린 문제들을 다루기에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p.14)

 

저자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르네상스'를 제시한다. 암흑의 시대로 불리는 중세가 르네상스를 맞아 종식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바로 르네상스, 즉 새로운 문화의 출현이라고 보았다. 군사, 경제 같은 '딱딱한(hard)' 이슈들을 어떻게 문화 같은 '부드러운(soft)'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이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쉽다. 하지만 군사적 위기, 경제적 혼란 속에서도 문화적 파워를 바탕으로 미국이 아직까지는 세계 1위 국가로 건재한 것을 보면 문화의 힘은 생각보다 질기고 강한 것 같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이미 그 자체로도 여타의 학문과 과목들 사이에서 구획화된 상황에서, 이 두 학문 사이의 소통 불능은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인문학은 과거의 작품들을 되살리고, 자연과학은 현재의 학문에 가치를 부여한다. ... 그런데 현재는 인문학이라는 분쇄기가 자연과학의 살아 있는 알갱이를 받아들여 분쇄하고 곱씹는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문화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에는 사실 사회과학이 자리하고 있으나, 사회과학은 두 문화 사이에서 연락선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실정이다. (p.65)

 

또한 저자는 인문학을 부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을 보니 '유럽의 지성'이라고 불리던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인문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도 현재 실업난으로 인해 최고교육기관에서 인문학, 사회과학 전공으로 졸업한 사람들이 정규직 취업을 못하고 인턴, 파트타임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저자의 말대로 인문학은 자연과학 같은 실용적 학문을 '분쇄하고 곱씹으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여러 방면으로 시너지 효과를 많이 낼 수 있는 학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돈 못 벌고 고루한 학문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다. 아니, 학문이라는 것, 배움이라는 것 자체가 무언가 당장 결과를 내지 못하고, 돈으로 바꿀 수 없으면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 이런 세태에 대한 저자의 쓴소리가 더욱 가슴에 사무친다.

 

저자는 경제적, 사회적인 여유만을 추구하는 웰빙 대신 심리적, 도덕적, 정신적 웰빙도 함께 추구하는 '웰리빙'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침 최근에 읽은 책에서 보니 경제적인 소득이 낮을수록 값이 싸지만 영양가는 낮은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먹고, 소득이 높을수록 영양가가 높고 몸에도 좋은 유기농 식품을 먹는다고 했다. 이 고소득자들 중에는 싸구려 음식을 대량 생산하는 제조업체, 이런 음식을 유통하는 유통업체에 다니는 임직원들도 있을터. 싼 인스턴트 음식을 사먹을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의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유기농 음식을 사먹는 이런 시스템이 과연 옳은 것일까? 저자의 짦은 문장 한 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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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두께가 매우 얇다. 하지만 한 줄 한 줄의 임팩트가 세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 이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찌는 듯이 더운 이 여름, 가슴 속에도 무언가 세상을 향해 뜨겁게 분출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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