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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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헌법의 풍경>에 이어 세번째로 김두식 교수님의 책을 읽었다. 김두식 교수님이 쓰신 책들은 '한 번 읽으면 멈출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쩌다보니 모 감자칩 광고 카피와 비슷한 말이 나왔다.) 이 책 역시 책을 든 순간부터 좀처럼 멈추기가 힘들었다. 다만 이 책이 앞에 읽은 두 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앞에 읽은 두 권은 내용이 다소 심각하고 고발적이었던 반면, 이 책은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욕망'에 관한 저자의 내밀한 고백을 담은 책이라서 개인적이고, 읽기에도 훨씬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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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이슈들은 어찌보면 잡다하고 뜬금없다. 이제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듯한, 그 유명한 '신정아 사건'과 영화 '색.계' 등 다소 자극적인 주제부터 저자의 가족과 어린 시절, 학창 시절에 관한 개인적인 추억, 그리고 이전 책에서도 주제로 삼았던 한국 기독교와 사법제도 같은 국가적, 사회적인 이슈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책 전체를 보면 '색'과 '계'라는 두 개념의 대결 구도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색'과 '계'는 알다시피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던 양조위, 탕웨이 주연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말이다. '색'은 단어뜻 그대로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 감성, 야수성, 일탈 같은 것을 상징한다면, 이와 반대로 '계'는 규범, 이성, 절제 등을 상징한다. 이렇게 보면 한 예로 신정아는 전형적인 '색'에 속하는 인물이고, 신정아 사건은 '색'과 '계'가 충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저자는 법학자이자 기독교 신자로서 철저히 '계'에 속하는 인물이고, 그와 반대되는 형이라는 인물은 '색'에 속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책에서 나는 특히 저자의 가족과 어린 시절, 학창 시절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가족 중에서도 어머니와 형에 관한 언급이 많은 것으로 보아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저자에게 영향을 준 방식은 정반대였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윤리 교사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언뜻 보기에 저자와 비슷한 성품을 가진, 철저히 '계'에 속하는 분이신 것 같다. 그러나 부와 권력을 탐하지 말라는 평소 가르침과 달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사준 위인전이 부의 상징인 '강철왕 카네기'와 권력의 상징인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였다는 것...! (그런 점에서 역시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머니는 위인전을 전집으로 사주셔서 다행이다. 적어도 내게 본받고 싶은 위인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니...) 어린 저자의 눈에도 어머니의 마음이 참 모순적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 기억이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저자를 '색'과 '계'의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 걸 보면.

 

반면 형은 여러 면에서 저자와 정반대의 인간형이다. 전형적인 모범생인 저자와 달리, 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고뭉치였고, 커서는 공부도 잘 하면서 놀기도 잘 하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부류의 인간으로 거듭났다. 글 한 편을 쓸 때도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읽어보고 문제가 없게끔 고치느라 화제가 된 적도 없었다는 저자와 달리, 형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솔직하게 글을 쓰고, 그 글 때문에 논란이 된 적도 여러번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형이 있었기에, 웬만해서는 '계'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자의 억압된 '색'이 형을 통해 대신 분출되기도 했고, 이제는 '형을 따라 나도 한번' 이라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이러한 '색'과 '계'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말은 '색', 즉 욕망이라는 것에 좀 더 솔직해지자는 것이다. 물론 자기 욕망에 너무 충실해서 주변 사람은 물론이요,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되겠지만, 그런 수준이 아닌 한 아주 개인적인 욕망에 대해서는 솔직해져도 괜찮지 않겠냐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또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욕망이 없다는 듯 짐짓 아닌 척, 초연한 척, 엄숙한 척 할 때 욕망과 현실, 색과 계 사이에 충돌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나도 저자처럼 '색'보다는 '계'에 가까운 인간이다. 욕망보다는 이성과 규범을 더 중시하며 살았고, 이 때문에 놓친 것도 있고, 후회 되는 일도 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하루 아침에 '계'로 살던 인간이 갑자기 '색'으로 살 수도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내게 그런 '색'의 욕망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 받아들이는 것 정도는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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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책을 비롯하여 작품이라는 것은 작가가 일정 기간 열심히 노력하여 작업한 결과, 즉 최종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매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김두식의 이전 작품이 결과물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 책은 인간적으로나 작가적으로나 저자 김두식의 캐릭터가 앞으로 점점 변화해 갈 것이라는 예고편 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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