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왜 부조리한가 - 경제학.철학.통계학.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로스쿨 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도 어느새 몇 년이 흘렀다. 몇 년 전 로스쿨을 도입한 목적 중 하나는 법학 이외에도 다양한 전공 출신의 법관을 양성하여 법 적용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함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그 목적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로스쿨 제도에 있어 선배격인 미국을 보면 그 목적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 최초로 하버드 법학대학원 석좌교수로 임명되어 화제가 되었던 석지영 교수를 예로 들어볼까. 석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배우고, 10대 때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한 후로도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하는 등 법학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보이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로스쿨에 진학, 검사로 재직한 뒤 하버드로부터 교수로 임명받았고, 현재는 자신의 과거 전공을살려 법과 예술을 접목한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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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왜 부조리한가>의 저자 레오 카츠도 로스쿨 제도의 수혜를 입은 인물이다. 학부는 물론 석사 전공까지 경제학인 저자는 (그것도 경제학으로 매우 유명한 시카고 대학!) 로스쿨 진학 후 재판연구원과 변호사를 거쳐, 현재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며 법학과 경제학을 접목하는 연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는 주로 법학의 수수께끼, 난제, 모순점 등 실질적인 법 집행보다는 법의 논리를 비롯한 법학의 본질적인 부분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연구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학부 전공인 경제학을 비롯하여 정치학, 통계학, 철학 등 다른 학문을 이용하여 법의 허점을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똑똑한 사람들만 모이기로 유명한 법의 세계에서, 그들의 머리를 짜내 만든 법학에 어떤 허점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순환론이다. 순환론은 경제학과 정치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투표의 역설, 애로의 정리, 사회선택이론 등을 통해 나온 이론인데,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 여러 개가 모여 사회적인 차원으로 커졌을 때는 전혀 다른, 비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주장이 맞물리는 법정에서, 더군다나 다수결 원칙을 따르는 배심원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 법정에서 이 같은 순환론으로 인한 오류는 크게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집행보다 전 단계인 법의 정립, 법의 연구 단계에서부터 법학자들이 많은 고민을 하고 최대한 지혜로운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려운 학술 용어는 가급적 피하고 다양한 사례를 활용했다. 앨, 클로이, 베아라는 가상의 인물이 나오는 사례는 책에 내내 등장한다. 이 밖에도 고용인이 자발적으로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것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렸을 때 고용주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오염물질을 배출할 권리를 사고 파는 것은 옳은가(탄소배출권), 환자가 자발적으로 죽음에 동의했을 때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안락사) 등 이미 사회적으로 여러 차례 거론된 이슈도 나온다.

 

이런 이슈들은 언뜻 보기에 법(계약)과 경제(계산)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애초에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학과 경제학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학문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저자가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인간의 존엄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법과 경제는 엄연히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절대적인 영역은 계약과 계산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인데, 법만 아는 법학자, 경제만 아는 경제학자들은 이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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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전공자라서 케네스 애로의 이론을 비롯하여 사회적 선택, 후생함수, 파레토최적 같은 용어들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법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법 하면 늘 어렵게만 느껴지고 공포 비슷한 것까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는 경제학 지식을 활용하여 법에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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