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

 

'자기계발서가 거기서 거기지', '별 다른 얘기 있겠어?' 이렇게 자기계발서를 욕하면서도 계속 읽고 있는 이유는 뭘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계속 읽고 있는 것 같다. 서점에 가서 제목이나 표지가 마음에 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들춰는 본다. 대강 보다가, 소설이나 다른 책 같으면 그냥 넘길 만한 대목인데도, 자기계발서는 워낙 기대한 것이 없다보니 어떤 문장이 마음에 콕 박히면 '이거이거 끝까지 괜찮은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고, 급기야는 '끝까지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읽은 자기계발서만 벌써 몇 십권은 훌쩍 넘은 것 같다. 에효효...

 

 

+

 

<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도 그렇게 만난 책이다. 제목이 워낙 임팩트가 강해서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뭐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빌렸다. 그런데 아무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이나 때우려고 집어들었다가 단숨에 읽어버렸다. 기대보다 괜찮았다.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세상에는 플러스형 인간과 마이너스형 인간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판단 기준은 간단하다.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면 플러스형이고, '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면 마이너스형 인간이다. '하고 싶은 것'이 '되고 싶은 것'보다 먼저이며,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p.78)

 

나는 한참 힘들던 시기에, 차라리 더 힘든 길을 선택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혼자 떠났고, 그곳에서 한층 깊은 외로움에 빠져들었다. 그 후에야 깨달았다. 외로움 속으로 정말 깊숙이 들어가면, 그곳에는 '남들은 다'라고 할만한 '남들'마저 없다는 것을. (p.124)

 

일단 외로움의 정의부터. 우리가 외로움 하면 주로 떠올리는 영단어는 단연 '론리니스(loneliness)'다. 내 곁에 아무도 없고, 연락할 사람조차 없는 허전하고 허무한 마음이 바로 이 론리니스다. 하지만 론리니스를 넘어서는 외로움의 단계가 따로 있다. 바로 절대고독의 경지인 '솔리튜드(solitude)'다. 솔리튜드라고 하면 나는 왠지 이육사의 '광야'가 떠오른다. 역사와 공간마저 초월하여 존재의 경계에 선 순간에 느끼는 감정. 뭐 나는 아직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지만, 남들이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 존재와 맞부딪치는 것을 절대고독, 솔리튜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말하면 어려운 얘기처럼 들리지만, 저자는 이 어려운 얘기를 가벼운 소실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썼다. 설리, 정은, 도균, 오 대리 등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직장문제, 연애, 가족, 친구 문제 등 일상적인 고민들이 이어져서 마치 트렌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사회인이라서 그런지 직장문제에 대한 얘기가 가장 앞부분에 나온다. 성적에 맞춰, 부모님과 선생님의 조언에 맞춰 대학을 선택하고, 그 대학 간판에 맞춰 직장을 선택하는 사람들. 운좋게 그 선택이 자기 적성에 딱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적성과 맞지 않아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들은 적성이 무엇인지조차 평생 모르고 살다 간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결국 외로움과 맞설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선생님이, 친척들이... 이렇게 남들이 하라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고, 그랬다가 그 사람들에게 버려지고 소외될 것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하지만 진짜 외로움은, 연인이 내 마음을 몰라주고, 친구가 내 말을 못 알아 듣고, 수많은 인파 속에 있는데도  그 안에 존재조차 알아주는 이가 한 명도 없을 때 온다는 걸,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홀로 방안에 있을 때보다 더 큰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를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큰 대학, 큰 조직이 무슨 소용일까. 외로움을 피할 때 더 큰 외로움이 밀려들 뿐인데...

 

우리가 사랑하면서도 외로움에 쩔쩔매는 것은, 상대에게는 엄격하며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중 잣대를 적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의 잘못은 어떤 것이든 용서받을 만하며, 만일 용서받지 못한다면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상대의 허물은 용서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용서가 안 되니까 괴롭고, 배신감을 주체하지 못해 외롭다. ...  분노의 8할은 과거의 일 때문에 일어난다. 나머지 2할 역시 지금의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무엇인가가 과거의 아픈 상처를 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p.100)

 

엄마는 딸의 출발점이다. 여자로서의 모든 인생이 엄마로부터 출발한다. 엄마가 죽어도 그 영향은 그대로 남아 딸을 평생에 걸쳐 지배한다는 말도 있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세계관 때문이다. ... 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기 엄마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낯선 엄마'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한다. 자기들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믿지만, 그게 착각일 뿐이라는 것을. (pp.334-5) 

 

이야기는 직업과 일에 대한 이야기에서 조금 더 근원적인 문제, 사랑과 인간관계,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심리학에 대해 조금씩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정말이지 모든 문제는 가족으로 통한다.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 연애 문제, 친구 문제도 결국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결핍이나 의존, 애착 같은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설리라는 인물이 대표적인 예로 그려진다. 완벽을 추구하는 어머니, 그리고 끝내 그런 어머니 곁을 떠난 아버지. 이 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설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 같은 여자가 되고 사랑하는 남자를 아버지 같은 남자로 만들고 미워하고 괴롭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아버지보다도 더 중요하다. 사실 예전에는 가족이나 결혼보다도 여자는 여자대로 자신의 삶을 살고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요즘은 사회적 성공만큼이나 아이가 정서적인 안정을 형성해주고 부모와의 유대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것 같다. 근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내딴에는 잘해준다고 한 일을 아이가 고스란히 받아줄 수 있을까? 아이는 아이대로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불편하게 느끼지 않을까? 참 어렵다.

+

 

캐나다의 문화비평가 마셜 매클루언이 말했다. "모든 문화와 문명의 형태는 외로운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대상을 위해 만들어낸 인공 대체물 같은 것이다. 직장이나 취미, 가족, 종교, 심지어는 사랑까지도. 인간은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런 것들을 발명해냈다." 매클루언의 말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한다. '인간은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문화와 문명을 만들었지만, 정작 그 문화와 문명의 발전을 이끌어간 것은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p.278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솔리튜드 훈련'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 솔리튜드 훈련은 혼자를 의식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면서 외로움을 희망과 가능성의 시간으로 바꾸는 연습을 말한다. 이 훈련은, 설리의 말을 빌리면 '노후를 위한, 그것도 수령자가 가입자 본인인, 세상에서 유일한 대박 보험'이다. 산다는 건 결국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길, 남이 있어야, 매체가 있고 물질이 있어야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외로움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미리 외로움과 친해지고, 외로워질 시간을 어떻게 행복하게 채울 수 있을지 준비를 해두면 앞으로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이미 책이나 음악 같은, 혼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취미가 있어서 다행이다. 물론 책도 남들이랑 같이 읽으면 더 재밌고, 음악도 남들로부터 지식이나 새로운 관점을 얻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언젠가 혼자일 때, 심지어는 책이라는 물질이 내 손에 없고 음악을 들을 길이 없어져도, 나는 책 생각, 음악 생각을 하며 혼자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지금 생각에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