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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의로운가 - 서울대 이정전 교수의 경제 정의론 강의
이정전 지음 / 김영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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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추기라도 한듯이, 최근에 읽은 책마다 마이클 샌델, 그리고 그의 저작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언급이나 인용이 나왔다. 그것도 각각 저자도, 장르도 다른 책이었는데. 지난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의 여세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걸까.

 

<시장은 정의로운가>. 이 책에서도 <정의란 무엇인가>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제목에 '정의'라는 단어가 그렇고,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한 대목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냐고 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정의에 관한 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정의란>이 학문상 도덕철학의 관점에서 쓴 책이라면, <시장은 정의로운가>는 전적으로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란>을 읽을 엄두가 안 나는 사람, 또는 강연 동연상만 보고 책 읽기는 미뤄둔 (혹은 나처럼 포기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쉽게 읽을 수 있다. 경제학이 무엇인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을 여러번 반추해도 겨우 이해할까 말까한 철학과 달리, 경제학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거나 경험상 체득된 지식만 활용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닌가.

 

앞서 고백했듯이 나는 <정의란> 강연 동영상만 보고 책은 읽다가 말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강연을 볼 때 어렵고 막연하게 느껴졌던 주제들을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정의'란 대체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강연을 진행하는 분인만큼 강연의 주제인 '정의'의 개념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강연을 보고 정의란 무엇인지 한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었고, 책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칙'이다.

 

경제학은 흔히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무역에서도 비교우위를 추구하고, 개인의 선택은 비용은 최소화하고 이익은 극대화한, 합리적인 것이며, 그러한 개인들의 이익의 합을 더한 것이 사회의 이익이기 때문에 사회의 이익, 즉 공익은 언제나 최적의 상태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러한가. 하루에도 수없이 이익보다는 손해를 보고, 심지어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사회생활도 똑같다. 모든 사람이 이익을 얻는 '윈-윈'이라는 개념은 학문상에나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런 세상에 시비를 가리고 당부당을 밝혀줄 원칙, 즉 정의가 없으면 손해본 자, 약자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비록 경제 민주화나 경제 정의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 내용에 관해서는 마뜩찮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적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보다는 협동이 더 중요해지고, 효율성이나 생산성보다는 사회적 통합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p.302)

 

출판계, 학계의 여러 인사들이 분석한 것처럼,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문서로서는 유례 없이 인기를 끈 것은 정의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갈망 또는 갈증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세상이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나 신념을 원했고, 그 때 만난 것이 경제학이라는 학문이었기 때문에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느 사회과학의 학문들과 다르게, 효율성, 비용편익 등 경제학의 개념을 활용하여 대상을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법은 나라에 따라, 체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에 비해 경제학은 환경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생을 감수하는 판단이 필요하고,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경제학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제학적인 마인드로만 생각해서는 라가디아 판사처럼 눈이 아닌 가슴을 울리는 판결을 내릴 수 없다. (p.43 노인과 명판사)

 

한창 이슈화되어 있는 '정의'라는 개념을 경제학과 결합하여 쉽고 재밌게 풀어쓴 점이 좋았고, 거기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제들과도 접목시켜 설명한 점이 참 좋았다. 인문학과 경제학을 함께 다룬 책들을 보면 논의가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서 아쉬운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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