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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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인상적인 책 한 권을 만났다. 제목은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 저자 코너 우드먼은 영국의 세계적인 컨설팅 그룹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성공한 애널리스트였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의 구조조정을 위해 직원 400명을 해고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고, 한명 한명에게 해고 통지를 하면서 자본주의의 비정한 속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로 사표를 제출, 배낭 하나만 매고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 길에서 코너 우드먼은 '진짜 경제'를 만났다. 대학교 경제학 시간에 교과서에서나 보던 경제, 회사 모니터 너머로 보는 경제 말고, 사람이 재화를 만들어서 가격을 매기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흥정하여 파는, 진짜 실물 경제 말이다. 그 과정이, 역시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웠고 경제학으로 먹고 살고 싶어하는 나에게도 퍽 와닿았고, 한동안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고 영국 웹에서 검색까지 해보며 '팬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문득 이때쯤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났고, 저자는 요즘 무엇을 하고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저녁, 저자의 신간이 나왔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거슨 운명이야!'

 

전작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약 유명세를 얻은 저자는 그동안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현재는 여행하는 경제학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전작을 읽고나서 저자가 혹시 여행 경험을 살려 사업을 하지 않을까 했는데, 여행에서 얻은 교훈과 지식을 더해 현대의 경제와 자본주의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학자, 언론인으로 거듭난 것 같아 너무나 멋졌다.

 

이번 신작에서 저자는 '공정무역'에 관심을 기울였다. 계기는 다름아닌 마시던 커피잔에 찍힌 공정무역 제품 표시. 그 표시를 보는 순간 '공정무역이 뭘까, 정말 단체에서 홍보하는대로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던 것이다. 사실 나도 궁금했다. 몇 년 전 공정무역과 관련된 단체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공정무역에 대해 처음 알고 좋은 것 같아서 주변 사람들한테 많이도 알리고 다녔다. 그런데 공정무역의 의미와 취지를 순수하게(?) 받아들인 나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그게 제대로 운영되는지 어떻게 믿냐, 사회단체가 관여 안 해도 대기업이 제대로 하고 있지 않겠느냐'며 반문했다. 그 때 나는 그렇게 깊이 아는 것이 없어서 제대로 대답을 해줄 수 없었고,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그 이후로 공정무역이나 사회단체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공정무역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이 알아보고 냉철하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공정무역의 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자국인 영국을 비롯하여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각지의 공정무역 제품 생산지를 돌았다. 공정무역의 실상은 예상보다 더욱 처참했다. 대기업과 달리 생산자에게 많은 수익이 돌아가도록 공정한 가격을 매기고 있다는 단체들의 말에는 허점이 많았고, 그나마도 중간상인이 착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시아, 아프리카는 선진국, 특히 중국의 자원 개발로 인해 국토가 몸살을 앓고 있었고, 중국은 선진국 기업의 하청업체로 변해 노동자 인권 문제가 심각했다. 공정무역 제품의 경우 공정무역 단체의 인증 기준이 애매하거나, 인증 표시를 다는 대가로 내야 하는 비용이 상당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공정무역의 진정한 취지를 살리면서 운영되고 있는 소규모 기업들이 공정무역 인증 제품에 밀려 시장 점유는커녕,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제까지 커피, 초콜릿 등의 제품은 웬만하면 공정무역 인증 표시가 된 제품으로 사려고 했는데, 공정무역으로 생산된 제품은 아예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고 해서 혼란스러웠다. 물론 좋은 공정무역 단체, 공정무역 기업도 많이 있겠지만. 그나저나 화장품도 유기농, 친환경 인증 제품만 사려고 하는데, 그런 인증 제품도 다 무의미한 것일까? 제품 원료가 아니라 인증료 때문에 가격이 비싼 것일까? 많이 공부하고 잘 따져보고 사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아... 현대 사회의 소비자는 너무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이번 책에서 저자가 가장 경계하는 나라는 바로 중국이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를 표방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국가라는 것은 이제 중국 사람들도 인정한다. 그런데 이 중국에 뿌리내린 자본주의라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수정되고 개선된 서양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빠른 시간 자본주의의 요점만 배낀 '속성 자본주의'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래서 노동자의 인권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환경적인 영향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걱정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자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인근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진출하여 해당 국가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 '시나리오'가 그 옛날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벌였던 해외 식민지 건설 내지는 경제적 착취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중국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는 조금 공허하게 들렸고, 결국 서구의 선진화된 자본주의가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대안도 아쉬웠다. 서구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중국을 비롯한 비서구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 이들 나라의 발전을 정체시키고 있는 것도 서구 선진국들의 원료 공장, 하청 공장으로 전락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저자도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 나라를 착취하는 선진국과 대기업 중에 우리나라, 한국 기업도 있는 것이다. '설마 우리나라 얘기가 나오지 않겠지' 했는데, 그것도 이들 나라를 착취하는 국가로 나오다니... 모른 것은 아니지만 아쉬웠다. 미국에서는 애플의 제품이 중국 노동자(그것도 어린 청소년들)의 인권을 착취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알려져 대대적인 소비자 운동까지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이걸 알고 있는 소비자는 얼마나 될까? 안다고 해서 해당 기업의 제품을 거부하는 소비자는 또 얼마나 될까? 착잡할 따름이다.

 

좋아하는 저자의 신작이라서 많은 기대를 했는데 역시 만족스러웠다. 참 부러운 사람인데, 점점 더 내가 부러워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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