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권혁태 옮김 / 돌베개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이라는 부제에도 나타나듯이, 이 책은 재일조선인 2세인 서경식이 썼다. 부끄럽게도 이런 분야에 대해서 영 아는 것이 없어서 저자가 이제까지 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해 일본, 한국 양국에서 활발히 활동해오신 분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재일조선인, 일본어, 일본문화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는데 인터넷으로든 책으로든 답을 구하기가 어렵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읽고나니 알고싶었던 답보다도, 오히려 새롭게 생긴 의문이나 문제가 더 많다. 재일조선인과 모어, 모국어의 문제뿐 아니라 역사교과서, 사죄, 책임론, 한국정부의 입장 등 한일 관계는 결코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절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학교 때 친구 하나가 생각났다. 아버지 직장 문제로 초등학교를 일본에서 다니고 중학교 때 한국에 건너온 친구였는데, 일본 학교에서 일본어 단어 하나를 뜻을 잘못 알고 틀리게 말한 것 때문에 일본 아이들한테 오해를 사서 이지메를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때까지 나는 일본, 일본어, 일본문화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는데, 그 친구 얘기를 듣고나서 괜히 분하기도 하고, 그런만큼 제대로 알아야 겠다 싶어 그 때부터 일본어도 배우고 일본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얕게나마 조금씩 알아갈수록 좋다고 여겨지는 점도 있는 반면, 실망한 점, 아쉬운 점도 있다.  

특히 역사문제가 그렇다. 일본의 권력자들의 문제라고만 여기기에는, 예상외로 일반 국민들이 제대로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점이 많은 것 같다. 그것이 정치가 아닌 교육, 언론, 심지어는 드라마나 엔터테이먼트 같은 쇼비즈니스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주입되고 있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나처럼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보이는데, 철 들 무렵부터 뼈저리게 이런 문제를 두고 고민해왔을 저자의 눈에는 얼마나 선연히 비치고, 또 비통할까.   

다소 어려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일본은 세계에서 드물게 나치주의와 홀로코스트에 관한 서적이 많이 번역 소개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연구 수준도 높은 나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지적 축적들을 자국의 역사나 현실의 사회 문제와 결부해 고찰하는 경우는 드물다. ... 일본이 히틀러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동맹관계였던 점, 따라서 일본 역시 홀로코스트에 대한 가해 책임의 일단을 면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하는 일본인은 너무도 적다. (pp.160-1) 

나 개인이 한국 베트남 파병의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한국인'으로서 정치적 의미에서 '집단적 책임'은 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전후에 태어난 일본인들은 일본국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죄'는 없지만 일본인으로서 '집단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 (p.251) 

패전이 '요고레(더럽혀짐-옮긴이)'인가? 그렇지 않다. '침략'이야말로 '요고레'인 것이다. (p.267)

... 일본국 그 자체가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그러나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그들에게는 피해자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들에 대한 가해자는 다름 아니라 자국의 권력이다. (p.285) 

원래 '책임'이란 타자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니 "감당할 수 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책임이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만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는데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못하겠다"고는 말할 수 없을 터이다. (p.291) 

만약에 천황제가 없어지면 일본은 완전히 해체될 것이라는 거죠. 왜냐면 일본이라는 국가가(중략) 근대 이후에 다른 지역과 달리 굉장히 독특한 건, 전근대적인 문화적 심벌을 끌어들여서 근대국가의 통일적 구심점으로 삼았다는 점이거든요. (p.4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