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아지면 달라진다 - ‘1조 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이충호 옮김 / 갤리온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영화를 보던 도중에 딸이 갑자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화면 뒤쪽으로 달려갔다. 친구는 딸이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뒤에 있는지 보려고 그러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딸은 화면 뒤에서 케이블 사이를 샅샅이 살폈다. 친구가 "왜 그러니?" 하고 묻자, 딸은 화면 뒤에서 머리를 쏙 내밀면서 "마우스 찾아요."라고 대답했다. (p.288) 

<많아지면 달라진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예화다. 컴퓨터로 영상을 볼 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마우스 커서가 사라지는 것처럼 영화 화면도 그런 줄 알고 오해한 아이가 깜찍하다. 나야 초등학교 때 처음 컴퓨터를 봤고, PC통신이라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는데(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다), 내 자식은 컴퓨터, 휴대폰, 스마트폰을 마치 생필품처럼 당연하게 느끼겠지. 

이 책의 저자 클레이 셔키는 인터넷 기술의 발전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주로 연구하는 언론학자로, 포린 폴리시에서 세계 최고의 지성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을만큼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책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는데, 전작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도 많은 주목을 받은 책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존의 미디어인 TV는 시청자를 수동적인 '객체'로 격하시켰지만,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고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여가시간을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주체'들이 늘어난 현상에 주목했다. TV가 여전히(또는 아직은) 강력한 매체인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 세대들은 TV보다 인터넷, 스마트폰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이 젊은 미디어는 TV와 달리 사용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에 없던 일을 가능하게 했다.   

 

동방신기의 웹사이트는 수십만 명의 젊은이가 모일 수 있는 장소와 이유를 제공했다. 학교 운동장과 커피숍에서 주고받으면서 그냥 사라지고 말았을 대화가 이곳에서는 전문 미디어 회사들만 누리던 두 가지 특성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접근성과 영속성이었다. (p.52) 

여러가지 예가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예시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로, 2008년 촛불집회에 동방신기의 팬사이트에 가입된 여중고생들이 참여한 일이다. 얼마 안 된 일이기도 하고 당시 직접 목격하기도 한 일인데 외국 저자의 책에서 보니 어찌나 신기한지...  

저자의 설명대로 사적인 의견이나 대화가 인터넷 공간을 통해 공개되고 파장을 일으키는 일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했다. 심지어 이제는 TV, 신문 등의 견해가 웹상을 통해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웹상에서 일어난 사건이 TV, 신문을 통해 보도되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얼마전 미국 뉴스에서 데미 무어와 애쉬튼 커처가 결별했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보도 내용이 예전 같으면 직접 취재를 하거나 다른 언론의 취재 내용을 편집한 것이었을텐데, 이번에는 그들의 트윗을 인용하는 게 전부였다. 그들의 팔로워들이 시청자보다, 아니 TV보다도 먼저 그들의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수많은 사건이 카메라폰으로 기록되고 인터넷에 업로드되어 전 세계 사람들이 보았다. ... 이전에는 그런 사건들을 기록할 때 전문 사진 기자에게 의존했지만, 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서로의 인프라가 되어가고 있다. (pp.40-1) 

다수가 늘 소수보다 옳은 것은 아니다. 다수의 대중이 소수의 전문가보다 늘 옳다고는 볼 수 없다. 이 책에도 그런 논의가 나온다. 과연 다수의 대중이 생산한 지식을 믿을 수 있을까? 이것 참 딜레마다. 하지만 '소수의 전문가'라는 하나의 선택지만 있는 것보다는 '소수의 전문가' 또는 '다수의 대중'의 견해 중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다. 그렇기 때문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일단 인터넷에 어떤 의견이 있는지 검색부터 해보는 습관이 들었나보다.  

 

1990년대에 이루어진 많은 연구는 잠재적 사용자들에게 만약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 대답으로는 "정보를 찾는 데 쓰겠다."거나 "숙제를 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종류가 가장 많았다. 그렇지만 이미 온라인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았더니, 그 대답은 아주 다르게 나왔다. "친구와 가족과 연락을 유지하는 데", "사람들과 사진을 공유하는 데", "관심이 같은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는 데"와 같은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p.261) 

최근 며칠 동안, 의도한 것도 아닌데 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변화에 대한 책을 연달아 세 권 읽었다. 맨 처음 읽은 책은 인터넷 기술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내용이었고, 다음에 읽은 책은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상반되는 내용의 책을 읽고 머리가 복잡했는데, 이 책을 읽고 정리가 되었다. 좋다, 나쁘다는 인터넷이 탄생하여 발달하는 것을 목도한 현 세대만의 고민일지 모른다. 책, 신문, 라디오, TV, 전화 등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매체에 대해서도 당시에는 찬반양론이 있었을 것이다.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여전히 사용되어지고 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이미 온라인 세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책, TV 대신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주 미디어로 활용하고 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인터넷을 주 미디어로 활용할 것이다. 그 유명한 마샬 맥루한의 말대로 미디어가 메시지이고 마사지라면,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는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세상이 오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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