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2009-05-11  

 
대학시절, 언젠가 한 교수님이 “서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경제학은 서양의 학문이라고 여겼던 관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개념과 수식을 외우며 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했건만, 정작 우리나라의 경제학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엄두도 못 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얼마전 다산초당에서 나온 한정주의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세웠으며, 후기로 갈수록 성리학이 득세했던 조선에서 경제학이라는 실용적인 학문이 발붙일 틈이나 있었을까? 목차를 살펴보니 박제가, 이익, 정약용, 박규수 등 18세기를 전후로 등장한 실학자들의 이름이 보인다. 이지함, 이중환, 채제공 등 언뜻 실학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들도 있다. 빙허각 이씨라는 여성 경제학자의 존재는 아예 새롭다. 이들을 왜 경제학자라고 부르며, 이들이 어떻게 조선을 구한 것일까? 의문을 품고 책을 펼쳤다.  

 

책머리에는 ‘조선을 구한 경제학자 13인의 가상 좌담’이 펼쳐진다. 좌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인물들의 관계, 사상의 연결점과 차이점 등을 제시하여 앞으로 이어질 내용에 대해 대략적인 예상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간의 논쟁을 자유무역협정(FTA)과 결부시켜, 이러한 논의가 현실에서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생각해보게끔 한 점도 좋았다. 

 

학자들의 사상과 현대의 문제를 연결하는 시도는 좌담 후에 이어지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 중에도 자주 엿보인다. 가령 채제공이 ‘시전 상인은 생활필수품을 개인 상인으로부터 싼값에 매점한 후 비싼 독점 가격을 매겨 백성에게 팔아 큰 이익을 남기려고 했다(p.81)’고 지적한 부분은 현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독점의 문제, 그 중에서도 대형 유통업체의 폐단을 이르는 듯했다. 박제가가 ‘소비를 촉진하면 생산 역시 활기를 띠고 상업은 나날이 발전해 나라와 백성의 삶은 풍요로워진다(p.137)’고 말한 대목에서는 케인즈의 유효수요설의 원조가 조선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질 정도다. 조선의 사상이라고 하면 왠지 고루하게 느껴지는데, 오히려 그 당시에 이미 이렇게 파격적이고 신선한 주장을 했다니 신기하다.

 

이 책의 제목은 언뜻 부적절하게 보인다. 18세기 이후 외세의 침략으로 급속히 몰락한 조선의 향방을 보면, 그들의 사상이 ‘조선을 구한’ 것이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나라를 구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조선의 방대한 학문적 성과와 치열한 지적 환경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는 조선을 구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우리 역사에도 이런 훌륭한 경제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은 ‘조선의 경제학자’라는 주제 외에는 서술방식과 구성 면에서 다른 책들과의 차별점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책머리의 ‘가상좌담’처럼 새로운 서술방식을 계속 시도했다든가,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나오는 대로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순으로 인물들의 순서를 개연성 있게 배치했더라면 더욱 읽기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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