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셰프 - 영화 [남극의 셰프] 원작 에세이
니시무라 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이름하여 2박 3일 냄비 요리. 다양한 냄비 요리로 3인간 계속되는 엄청난 계획이다. 첫째 날은 냄비에 술을 넣고 양배추와 돼지 삼겹살을 재료로 한다. 양배추에서 나오는 수분과 술만으로 잽싸게 익혀 폰스로 간을 해서 먹는, 요리라고도 할 수 없는 요리이지만 소박하면서도 좋은 맛을 낸다. 돼지고기의 기름이 미묘하게 양배추에 휘감겨 절묘한 맛을 이룬다. 어떤 요리치가 만들어도 실패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것으로 첫째 날을 보내고 남은 국물에 물을 더해둔다. 다음 날 저녁 식사는 듬뿍 우러난 국물에, 뼈째 토막 친 닭고기를 집어넣고 마찬가지로 폰스를 써서 이번에는 닭백숙으로 기분을 낸다. (중략)... 그런데 결국 이 계획은 이틀째 되던 날에 좌절되었다. 숙성된 스프에 경탄을 금치 못한 대원들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먹어 치워, 결국 박사 카레는 늘 해오던 대로 처음부터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무튼 맛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밖에. (pp.233-4)
 

 

한국인도 먹는 것으로는 빠지지 않는 민족이지만, 일본인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유행한지 얼마 안 되는 맛집 탐방, 미식가 문화가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널리 퍼져있어서, 방송만 해도 '구루메'(미식가를 뜻하는 gourmet의 일본식 표현) 리포트를 잘해도 밥만 먹고 사는 연예인이 수두룩하고, 국민적인 아이돌그룹이 셰프가 되어 게스트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든가(SMAP X SMAP 의 'Bistro SMAP'), 좋아하는 음식 사이에 숨겨진 싫어하는 음식을 맞추는 코너가(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입니다'의 '쿠와즈키라이왕 결정전') 프라임 타임에 방송되며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내가 먹는걸 좋아해서 이 프로그램도 즐겨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인들이 음식을 얼마나 사랑하면, 오죽하면 남극에서까지 음식 타령일까? <남극의 셰프>는 저자 니시무라 준이 총 4년간 남극관측대에 요리사로 파견되어 월동 생활을 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남극'이 배경이라는 것만 해도 충분히 화제성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게다가 '셰프'라니 일본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를 알겠다.

 

육지에서 공수해온 제한된 물자로만 음식을 마련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 더군다나 니시무라 준는 전, 현직 요리사도 아니고, 해상보안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일 뿐이다. 그러나 임기응변과 재치,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이야말로 인간 생활의 기본'이라는 뜨거운 열정으로 니시무라는 하루하루 웬만한 오성급 호텔이나 고급 요리점 셰프 못지 않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냈다. (가끔 실패하기도 했다 ^^) 얼마나 맛있어보이는지, '사실 이 사람들 있는 곳이 홋카이도 어디쯤인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 속세에 사는 나는 왜 이렇게 못 먹고 살고 있는 걸까ㅠㅠ)

 

하지만 음식 이야기가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대원들은 관측대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실패하기도 하고, 열악한 환경에 성인 남자 여럿이 모여 있다보니 성격차이나 의견차이로 부딪치는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느끼기도 하고, 속세에서는 맛보기 힘들었던 유대감이나 우정을 발견하기도 했다. 큭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로 웃긴 얘기가 많지만(아니 거의 전부지만), 임무를 마치고 대원들이 남극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왠지모르게 가슴이 찡하고 감동이 벅차올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