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심리학 - 심리학의 잣대로 분석한 도시인의 욕망과 갈등
하지현 지음 / 해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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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전문의이자 건국대 의대 교수인 하지현이 쓴 <도시심리학>은 현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현대 도시인들의 문제를 크게 소통의 부재, 자아의 두 얼굴, 욕망의 가속도, 관계의 소용돌이로 나누고, 이들이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다양한 주제와 예화를 통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 급한 전화도 없는데 왜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지, 헤어진 연인의 미니홈피는 왜 자꾸 들락날락거리게 되는지, 왜 별다방 커피는 깐깐히 고르면서 커피믹스로 탄 커피는 군말 없이 마시는지, 왜 노래방에 가면 부르고 싶은 노래는 포기하고 불러야 하는 노래를 부르는지... 평소 궁금했던 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읽으니 속이 시원하면서도 짠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 마주하는 도시인들의 얼굴은 한없이 강하고 차가워 보이는데, 그 얼굴들 뒤에는 이런 연약한 자아들이 숨어있다니 씁쓸하다.  

    

 

'정서적 허기'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미국의 학자 로저 굴드가 명명한 '정서적 허기'는 정서적으로 고통이나 괴로움, 외로움 등을 느꼈을 때 배고픔이 밀려오는 현상이다. 나도 바쁠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는 배고픔을 잘 느끼지 못하다가 집에 오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급격히 허기를 느끼곤 한다. 불편한 회식 자리나 만남을 가지면 음식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탈이 나는 때도 있다. 반대로 가족이나 친한 친구를 만나면 마음 놓고 열심히 먹는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과식을 해서 문제다. 나만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걱정스러웠는데, 책에 따르면 다행히도(!) 저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이런 증상이 있다고 한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역시 씁쓸한 기분이 든다.

  

 

<도시심리학>은 인간의 문제를 개인의 본능이나 근원적 욕망, 후천적 학습과 환경 등에서 찾는다는 점은 심리학적이지만, 문제를 개인이 아닌 도시라는 범위로 확장하여 살핀다는 점은 사회학적이다. 도시라는 거시적 환경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점도 사회학과 맥락을 같이 한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여느 심리학 서적보다 재미있게 읽고 공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적 인간이든 사회학적 인간이든 간에 도시라는 거대한 사회에 순응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자아를 지켜나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이 책이 재미있게 읽힐 것이다.

 

 

소풍 때나 먹던 김밥은 어느새 '천 원 김밥'으로 변형되어 새벽이든 낮이든 누군가의 허기를 때우고, 과학과 정보기술(IT)로 무장한 신세대가 이전 세대들이 했던 것처럼 점집을 찾아 운명을 내맡긴다. 코만 조금 높이고 턱만 깎으면 인생 역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환상, 노량진과 신림동의 고시촌에서 한 방을 노리며 청춘을 보내는 고시족의 심리, 개인정보 누출에 지대하게 신경 쓰면서도 술 마신 뒤 차를 대리운전 기사에게 맡기고 코골며 자는 남자들의 이중잣대...... (p.5 작가의 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치열한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람과의 관계에서 거리를 두고 이해타산을 따져 행동한다. 이런 부득불한 상황이 기묘한 배고픔을 유발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배고픔은 먹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위장이 비어서가 아니라 마음속의 한 공간이 비어 있고 음식은 그걸 채워줄 수 없기 때문이다. (p.216 관계의 소용돌이) 
   
 한국의 특이한 교회 문화 중 하나가 부흥성회와 새벽기도다. 원하는 것이 있거나 신앙의 심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명제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이다.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들이고, 백팔배를 하고, 새벽기도를 위해 3시 반에 일어나 교회에 가는 행위는 모두 일맥상통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p.49 소통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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