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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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재밌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별로야." 학교 문학 수업의 과제로 이 책을 읽은 동생은 책의 감상을 묻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한국 소설이 전쟁이나 운동권의 얘기로 귀결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은 세상의 온갖 걱정과 시름을 잊고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그림, 즉 만화를 그리는 아이이므로, 웃음보다는 한숨과 눈물이 어울리는 우리네 역사가 자신의 감성과 맞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다. 재미있게도 동생과 동년배인 후배도 같은 평을 했다. 단 두 명의 표본을 가지고 일반화를 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어쩌면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에 태어난 나와 이후에 태어난 동생과 후배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광주 민주화운동의 전범인 전두환 치하에서 태어난 나, 그리고 적어도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명목이라도 있는 노태우의 시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태생(?)이 다르니 세상을 보는 관점도 일치하지 않으리라. 


음,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는 전후반 상관없이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는 것이다. 내 주변만 봐도 이 책에 대한 내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감상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김연수님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언니가 있는가 하면, 민주화 운동이나 남북통일을 빼면 '한국' 문학이 어떤 것을 논할 수 있을까하고 반문하는 후배도 있다. 어린 친구들은 이 책을 386 세대, 혹은 그 후의 세대의 레퍼토리 쯤으로 여기는 걸까. 하지만 소설에 등장한 역사적인 배경과 사건들은 작가 자신의 의식을 형성한 주요 경험들 -작가 자신이 주인공과 비슷한 시기에 어린시절을 보내고 대학생활을 했으므로- 이기 때문에 등장한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의 문제의식과 주장은 지금의 세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오히려 수능과 내신, 스펙 쌓기와 공모전, 토익으로 점철되는 청춘을 보내는 지금의 20대가 더 불쌍하지 않은가. 10년이나 20년 후, 내 또래의 작가들이 수능 회고담이나 공모전 후일담 정도를 소재랍시고 글을 쓸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자기 자신이 되어라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자기 자신이 되어라." [네가 누구든]에는 일제 시대부터 90년대 초의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던 사람들은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러한 연(緣)은 대한민국의 서울은 물론이요 독일의 베를린까지 넘나든다. 인물들은 국가, 체제, 정부, 이데올로기 등 개인의 상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들을 탐구하거나 혹은 저항한다. 그런데 갖은 고초와 열병 같은 외로움을 겪은 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새로운 정부나 이데올로기의 승리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그저 이 시간, 지구 위에, 사랑하는 누군가를 그리며 존재하고 있다는 것뿐.  우리는 불식중에 국가나 정부, 법, 회사, 조직, 학교 등이 우리 위에 존재하며, 우리를 통제하거나 간섭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태생적인 경향이라기 보다는, 교육과 사회화, 매스미디어, 혹은 군대를 통해 그런 생각을 주입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만약 이 나라에 지금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같은 조직과 관여할 일이 있었을까? 21세기 한국이 아니라 화랑들이 말달리는 신라의 어느 벌판 위에 태어났다면?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찬 서울이 아닌 스위스 산골마을에 태어났다면? 그래도 우리는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고 괜찮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했을까? 결국 개인과 체제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택한 조직을 위해 '종사'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시키는 대로 '복종'할 필요는 없는게 아닐까?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무정부주의자라거나 반체제주의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결코 아니다.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사는 것 역시 우리가 선택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이나 이민, 자퇴나 퇴사 등의 선택을 했겠지...
 
 

책을 읽으면서 종종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렸다. 뫼르소는 보이지 않는 존재 -신이나 국가, 가족이라는 관습 등- 에 매달려 있는 다른 인간들에게 '이방인(the stranger)'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뫼르소에게는 이방인이었고, 그들은 그들 서로에게 결국 이방인일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빼면 자기 외의 인간은 모두 '이상한(strange)' 사람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네가 어딨든 어떤 체제에 속해있든'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이라고 얘기한다. 인간이 느끼는 사랑과 외로움, 열정과 고통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 어떤 사상이나 학문보다도 중요한 삶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지극히 '인본적인(humanitarian)'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세대를 거치고 다양한 공간을 누벼 다다른 주제가 결국 '사람'이라니, 허무한가? 뭐 어때! 그것이 인생인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우주 어딘가에 너를 이해해 줄 존재가 있다. 결국 사람의 외로움은 국가나 관습, 회사나 조직이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외로운 '사람'일 뿐이다. 어쩐지 내 머릿속에는 인간이라는 '이방인'들이 지구라는 '게스트 하우스'에 모여서 통하지 않는 말로 일치되지 않는 경험을 늘어놓으며 껄껄대는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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