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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평점 :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마쓰이에 마사시의 장편소설 <거품>의 주인공인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사나이 가오루'는 전적으로 전자였다. 도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은 두 분 다 교사이고 학교 성적 우수하고 교우 관계도 원만한 가오루는 누가 보아도 아쉬울 게 없어 보이지만 그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어떤 '증상' 때문에, 가오루는 평범한 일과도 오래 하기가 어렵고 사람들과 긴 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도 힘들다. 결국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에서 한참 떨어진 해변 마을에서 재즈 카페 '오부브'를 운영하는 작은할아버지 '가네사다'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가네사다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유일하게 튀는 존재였다. 선원이 되려고 스스로 오타루의 상업학교에 진학해 러시아어를 공부했으나 전쟁 중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었고 전후에는 좌익으로 몰려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가오루의 어머니는 가오루를 가네사다에게 맡기는 걸 탐탁지 않아 했지만 가오루는 가네사다와 살게 되고부터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가네사다는 가오루에게 직접적인 가르침을 주는 건 아니지만 남들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았고,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가오루에게 용기를 준다. 가오루는 매일 카페에서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심부름을 하고 '오카다'에게 요리를 배우면서, 세상에는 공부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고 그 일만 잘해도 먹고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거품>은 청소년이 주인공인 성장 소설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깊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아마도 가오루는 '번아웃'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교 진학 후 내내 성적이 우수했고 유도부, 검도부 등 다수의 부활동을 한 것만 보아도 그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앞만 보고 달렸는지) 짐작이 된다. 가오루가 학교를 그만두고 작은할아버지 집에 살면서 카페 일을 거드는 모습은, 번아웃으로 퇴사한 직장인이 지방이나 외국에서 '한 달 살기', '두 달 살기'를 하면서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가오루가 현재를 즐기면서도 미래의 불안을 곱씹는 모습도 친숙한데, 이때의 불안은 부모님처럼 사회가 정한 대로 대학을 나오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는 삶 이외에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걸 몰랐던 때의 불안과 달리, 가네사다나 오카다처럼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사는 길도 있다는 걸 알게 된 후의 불안이라 덜 쓰고 덜 팍팍하다.
이 소설은 여름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담고 있어 여름에 읽기 좋다. 시간적 배경이 지금이 아닌 6,70년대 일본이고, 공간적 배경은 해변 마을의 재즈 카페라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난다(하루키의 소년 시절과 겹쳐 보이는 장면도 몇 있다). 소설 후반에 로맨스 요소도 있는데 그야말로 아직 어린 소년의 풋풋한 첫사랑 느낌이다. 가오루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그만큼 강렬했지만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았고 그래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 사랑이 '그렇게' 끝나서 가오루는 아쉬웠을까(어쩔 수 없지) 후련했을까(차라리 다행?). 어쩌면 최악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 학창 시절의 여름을 삶의 첫 전환점으로, 잊지 못할 추억으로 만든 가오루가 부럽고, 그런 가오루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