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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평점 :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다. 그것도 작년 한 해 동안 두 명이나(각각 다른 그룹. 둘 다 최애 아님).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에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는 다수의 여성에게 성폭행 범죄를 저질러 형사 처벌을 받았고, 그 밖에도 좋아하는 배우, 작가, 예술가, 정치인 등등이 범죄 또는 스캔들의 가해자로 지목되어 사라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여태 남아 활동 중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남성인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다시는 남성 연예인, 예술가 등등을 좋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남성 연예인, 예술가 등등에게 호감을 느끼는 내가 한심하고 부끄럽다. 왜 여성은 남성과 직접 만나거나 사귀는 게 아니라 멀리서 팬질, 덕질을 할 뿐인데도 이런 죄의식 또는 걱정을 느껴야 하는가.
미국 시애틀 출신의 에세이스트, 도서평론가, 기자인 클레어 데더러가 쓴 <괴물들>은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되는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팬의 시선에 대한 책이다. 어려서부터 열렬한 예술 소비자였던 저자는 자신이 열광했던 예술가 또는 창작자 중에 끔찍한 성폭행범, 학대범, 마약 중독자 등이 있는 걸 알고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가령 로만 폴란스키, 마이클 잭슨, 파블로 피카소, 마일스 데이비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루어낸 위대한 예술가인 동시에 전 세계인이 다 아는 범죄자 또는 스캔들 메이커이기도 하다. 만약 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똑같이 저지른 일반인을 만난다면 우리는 그를 비난하거나 외면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들의 예술 작품(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마이클 잭슨의 음악,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은 여전히 소비되고 심지어 찬사를 받을까.
이 책은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된 예술가들의 목록을 열거하거나 고발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런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대하는 복잡한 팬의 마음, 예술 소비자의 심리를 소개한다. 영화 팬인 저자는 로만 폴란스키의 범죄를 싫어할 수는 있어도 그의 영화까지 싫어하기는 힘들다고 고백한다. 나는 로만 폴란스키가 만든 영화를 본 적조차 없기 때문에 저자의 고백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파블로 피카소, 마일스 데이비스,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해서는 그들의 작품을 접한 적은 있지만 팬이 될 정도로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예술이 존재하지 않아도 나의 일상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마이클 잭슨이다. 나는 오랫동안 마이클 잭슨을 '아동 성추행 혐의가 있는 불세출의 스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가 작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의 무대 영상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한동안 그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관심이 살짝 식은 후에야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 혐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이미 그의 팬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혐의는 혐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만약 혐의의 대상이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면 - 가령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연예인이라면 - 과연 내가 그렇게 생각할까. 비슷한 예가 쟈니스 엔터테인먼트(현 스타토)이다. 이 회사가 그동안 얼마나 큰 범죄를 일으켰고 은폐해 왔는지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회사 소속의 연예인들을 좋아한다. 가해자는 죽은 사장이니까 소속 연예인들은 좋아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연예인의 소속사가 비슷한 범죄를 일으켰어도 똑같이 생각했을까.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주로 남성 예술가를 다루지만 여성 예술가를 다룬 부분도 있다. 여성 예술가에 대한 감정도 어려운 문제다. 책에 나오는 사례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사귀었던 실제 경험을 담은 책 <단순한 열정>은 배우자가 있는 남성과 교제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반도덕적이고, 탈냉전 이전에 적국인 러시아의 남성과 사귀었다는 점에서 반애국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성인 예술가가 자유롭게 자신의 성적인 관심과 경험에 대해 털어놓는 글을 썼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게 평가했는데, 반대로 남성인 예술가가 그런(자유롭게 자신의 성적인 관심과 경험에 대해 털어놓는) 글을 썼다면 나는 과연 그 책을 좋아했을까. 아마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식의 구분은 개인적인 선호에 그치지 않는다. 애초에 남성 작가가 자신의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경험이나 생각에 대해 쓴 글은 허다한 반면 여성 작가의 그런 글은 드물다. 이 책에 나오는 모성 문제처럼 - 남성은 부성이 없어도 비난 받지 않지만 여성은 모성이 결여되었다는 혐의만 있어도 비난 받는다 - 사회가 여성에게 유독 가혹하다면 일개 독자인 나 정도는 관대하도 괜찮지 않나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된 예술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대신해서 결론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어떤 범죄까지는 괜찮고 어떤 범죄는 안 괜찮은지 일률적으로 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억지로 정한다 해도 어차피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기준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예술 영화의 팬이 아니기 때문에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를 평생 안 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문학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독자로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지 않을 수는 없다. 사실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전혀 호감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오히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성성에 대한 집착과 여성 혐오가 스스로 남성성이 부족하다고 느낀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