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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평점 :

많은 사람들이 볼 정도의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개된 장소에 글을 쓰는 이상 나름대로 자기 검열이라는 걸 한다.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사서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누가 내 글을 읽고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나중에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길게 쓴 글을 지우게 되고 쓰려던 글도 안 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자기 검열 같은 건 하지 않은 듯 보이는 과감하고 솔직한 글에 대한 동경이 있다. 이런 것까지 쓴다고? 이런 것까지 털어놓는다고? 싶은 글을 읽으면 묘한 희열마저 느낀다. 백은선 시인의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딱 그랬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결코 순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가정 폭력에 시달렸고, 학창 시절 내내 왕따를 당했다.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할 뻔했으며, 여자라는 이유로 크고 작은 성희롱과 폭력을 당했고 이는 문단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비로소 안정된 삶을 사는 듯했으나 몇 년 전 이혼하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일도 하고 살림도 하고 육아도 하는 삼중고를 겪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남자가 좋고, 돈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시를 쓰고,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고 토로하면서 둘째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나. 이런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한 마음. 모른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이 책은 내용만 솔직한 게 아니라 문장도 저자의 일기를 그대로 옮긴 듯 거칠고 자유롭다. 이 점을 당혹스러워하는 독자들도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이런 문장들이야말로 21세기를 사는(인터넷 많이 하는) 사람이 쓴 문장 같고,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기록하고 보전할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저자도 책에 한강 작가를 좋아하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다고 썼는데, 내 생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강 작가를 흠모하지만 모두가 한강 작가처럼 쓸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고, 그러니 백은선 시인은 백은선 시인답게 쓰고 나는 나답게 쓰는 게 좋은 것 아닌지. 그게 비록 싫고 이상하더라도 좋은 면도 아주 없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