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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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했던 수면장애가 다시 생겼다. 보통은 오후 열한 시쯤 잠자리에 들어서 오전 일곱 시쯤 일어나는데, 요즘은 열두 시가 넘어도 잠이 오지 않고 겨우 잠들었다 깨면 새벽 네 시다. 잠이 안 오면 나는 무조건 책을 읽는데,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다시 잠들 기미가 안 보일 때 읽기 좋았던 책이 김영하 작가의 신작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이다. 몽롱한 정신으로 한줄 한줄 읽다보면 순식간에 글 한 편을 다 읽고 어느새 마지막 장을 덮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매직...! (그만큼 내용이 흥미롭고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읽기 좋았다는 뜻이다.)


그동안 김영하 작가가 발표한 책들을 거의 다 읽은 것 같은데, 이 책만큼 작가님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 책은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발표할 수 없었던 부모님의 개인사라든가, 유년기와 청소년기, 청년기에 남몰래 안고 있었던 열등감이나 우울, 불안, 죽음에 대한 충동 등을 전에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젊을 때는 인생이 선불제인 줄 알고 지금의 고생이 나중의 영광으로 이어질 거라 믿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인생은 후불제이며 젊어서 함부로 쓴 건강과 시간의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는 고백 또한 가슴에 사무쳤다(ㅠㅠ).


책의 제목이 된 <단 한 번의 삶>이라는 문구는 (후기를 제외하고)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어떤 위안>이라는 글에 등장한다. 이 글에서 저자는 자신이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겁을 주었지만 그 '나중'은 오지 않았으며, 온다 한들 자신으로서는 삶을 돌이킬 수도 없고 돌이키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단 한 번의 삶을 살고, 살면서 무수한 선택을 하며,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삶을 바꿀 수도 있지만 무수히 많은 다른 선택이 그 선택을 무용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이런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나 후회로 지금을 흘려보내기 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게 낫다.


돌이켜 보면 나도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이런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나 후회를 종종 하는 편이고, 그때마다 여지 없이 수면장애가 발생했던 것 같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나 새벽에 읽은 책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책을 읽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할 때도 종종 있는데, 그런 삶은 아무리 부유하고 화려하다 해도 부럽지가 않다. 오히려 작가님이 책에 쓰신 대로 나이가 들면서 급속도로 나빠지는 시력 때문에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한스러울 뿐. 제목은 <'단 한 번'의 삶>이지만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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