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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무늬영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평점 :

겨울옷 정리는 식목일 즈음에 하려고 했지만 3월 중순인데도 날씨가 퍽 따뜻해서 패딩과 니트 등 한겨울에 입는 옷은 미리 정리했다. 이렇게 겨우내 입었던 옷들을 세탁하고 접어서 서랍에 넣고, 봄에 입을 옷들을 서랍에서 꺼내어 옷장에 걸다 보면 완연한 봄이 되고 또 여름이 올 것이다. 작년보다 일찍 찾아오고 더 길어질 거라는 이번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 더위 때문에 힘이 들 때마다 나는 이 봄의 선선한 날씨를 그리워하겠지. 어쩌면 차라리 한겨울이기를 바라기도 할 것이다. 정작 한겨울에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그리워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렇게 그리워하기만 하다가 흘려 보내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한강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은 작가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쓴 일곱 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한강 작가가 이전에 발표한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는 물론이고, 비슷한 시기에 출간한 장편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과 비교해 분위기가 훨씬 밝고 희망적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나 상흔을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정신적 붕괴나 인간 관계의 단절 같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회복의 계기를 만나고 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선택을 한다.
이러한 전개를 따르는 대표적인 작품이 표제작 <노랑무늬영원>이다. 소설 속 여자는 교통사고로 양손을 다친 이후 이 년이 다 되도록 작업실 출퇴근은 물론 일상 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대로 손이 낫지 않으면 화가로서의 이력도 결혼 생활도 끝이 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친구가 사는 동네에 있는 사진관에 자신의 사진이 걸려 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듣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 그러면서 떠올리게 된, 사진을 찍어준 남자에 관한 기억과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아이들로부터 전해 받은 긍정적인 에너지는 여자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여자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운을 준다.
한강 작가가 201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책에 실린 2006년에 발표한 단편 <파란 돌>을 발전시킨 것이라는데, 얼마 전에 <바람이 분다, 가라>를 읽은 나로서는 <파란 돌>이 <바람이 분다, 가라>의 에필로그처럼 느껴졌다. <밝아지기 전에>와 <회복하는 인간>은 둘 다 가까운 언니 혹은 친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는 여성 화자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어쩌면 이 언니가 타인이 아니라 화자의 또 다른 자아를 상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일 수도 있었던 어떤 존재의 죽음을 겪으며 그 존재의 몫까지 살아내겠다고 다짐하는 화자의 모습은 한강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