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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소년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유리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5월
평점 :

3월이면 봄이고, 봄이 오니 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식물 하면 나에게 식물의 매력을 알게 해준, 지금은 종영한 라디오 프로그램(이자 팟캐스트로도 방송되었던) <임이랑의 식물수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임이랑의 식물수다>는 나에게 식물의 매력뿐 아니라 식물이 등장하는 좋은 책도 여러 권 알게 해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유리 작가의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이다. <브로콜리 펀치>에는 아버지의 유골을 묻은 화분에서 자란 식물이 딸에게 말을 거는 기발한 설정의 단편 <화분> 외에도 작가의 상상력과 문장력이 돋보이는 여러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 책으로 '이유리 월드'에 입덕해 이제는 이유리 작가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입하고 있다.
2024년에 출간된 이유리 작가의 소설집 <웨하스 소년>은 마음산책 짧은소설 시리즈로 출간된 만큼 길이가 짧은 소설 열네 편을 담고 있다. 길이는 짧아도 한 편 한 편의 울림은 상당하다. 가장 좋았던 소설은 목뒤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평생 한 번만 저장할 수 있는 하루를 몇 살이 되어도 재생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린 <돌이키는 하루>와 하루 동안 도파민 수치가 높았던 순간을 캡처해 주는 목걸이가 개발된 미래를 그린 <기쁨 목걸이>이다. 두 작품 모두 새로운 기술의 발명을 통해 시간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루 종일 신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이런 매일매일이 앞으로 계속 반복된다고 상상하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분에게 이 두 작품을 권하고 싶다.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소설이 대부분이지만, 대재앙 때문에 하루 중 5분 동안만 눈을 뜰 수 있는 미래를 그린 <5분 동안>이나 대중의 비틀린 관심 때문에 고통 받는 아역 배우의 삶을 그린 <웨하스 소년>처럼 어둡고 냉소적인 분위기의 소설도 있다. 연인의 몸이 따개비로 변하는 상황을 그린 <따개비>라는 작품도 인상적이다. 연인 또는 배우자의 신체가 다른 종의 그것으로 바뀌는 상황을 가정한 유사점 때문에 최근에 읽은 한강 작가의 단편 <내 여자의 열매>가 떠오르기도 했다. <내 여자의 열매>의 남편은 아내의 몸이 식물의 그것으로 바뀌는 상황에 대해 난처함, 당황스러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주로 느끼는 반면, <따개비>의 연인은 똑같이 난처함, 당황스러움을 느끼면서도 (<내 여자의 열매>의 남편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는 점이 로맨틱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