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에 토카레프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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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토카레프>는 영국에서 보육사로 일하며 글을 쓰는 일본인 여성 작가 브래디 미카코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이다. 거친 분위기의 제목 때문에 브래디 미카코가 그동안 써온 에세이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장르의 소설일 줄 알았는데(제목만 보면 킬러나 갱단이 나올 것 같다) 읽어보니 그의 에세이들과 아주 많이 닮았다. 브래디 미카코 자신이 딸로서, 엄마로서, 보육사로서, 독자로서 그동안 경험하고 생각하고 기대한 것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버무려 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주인공 미아는 브래디 미카코의 에세이에 자주 등장하는 영국의 빈곤 가정 아이들과 많이 닮았다. 또 다른 주인공 가네코 후미코는 실존 인물로, 한국인들에게는 조선의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열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진행된다. 영국의 중학생 소녀 미아는 하루 종일 엄마와 남동생을 돌보느라 바쁘다. 미아의 엄마는 자식이 둘이나 딸려 있는데도 일을 하지 않고 생활보호수당이 나오면 그 돈으로 자식들을 먹일 빵 대신 약물을 구입한다. 미아의 남동생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미아가 구해줘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미아는 당장 오늘 먹을 빵을 급식실에서 훔칠지 푸드뱅크에서 받을지 고민하며 사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괴롭고 힘들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고, 같은 반 친구들에게는 더더욱 할 수 없다. 말해봤자 그들은 미아를 구할 수 없고 미아의 처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만난 한 남자가 책 한 권을 소개해줘서 미아는 그 책을 읽기 시작한다. 표지가 파란 그 책의 주인공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을 살았던 일본의 소녀 가네코 후미코. 후미코도 미아와 마찬가지로 아빠가 없고 엄마만 있는데, 엄마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대신 남자에게 의존하고 딸을 방치한다. 미아는 엄마와 남동생을 돌보며 생계를 걱정하는 자신의 삶과 100년 전 일본을 살았던 후미코의 삶이 많이 닮았다고 느끼며,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는 아이의 처지를 비관하는 후미코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한다. 나아가 어쩌면 미아보다 훨씬 불행한 환경에 놓여 있는데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견디는 후미코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독서가 미아에게 정신적인 위로 혹은 지지를 준다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교육과 사회 복지 제도다. 미아는 엄마 대신 동생을 돌보고 생계를 걱정하는 자신이 철저히 혼자라고 느끼지만, 사실 미아 주변에는 미아를 지켜보는 이웃들과 친구들,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있다. 특히 미아의 이웃이자 미아의 친구 이비의 엄마인 조이는 자신도 싱글맘으로서 쉽지 않은 삶을 살면서 미아와 미아의 남동생까지 챙겨주는 고마운 어른이다. 음악이 미아에게 주는 위로와 희망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미아는 윌의 제안으로 랩 가사 쓰기에 도전하는데, 이를 계기로 자신의 숨은 재능도 발견하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게 된다. 브래디 미카코 자신이 좋아하는 펑크록 덕분에 인생이 바뀐 케이스라서 이런 전개가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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