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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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의 얼어붙은 바다에서 한 남자가 나온다. '호크(hawk)'라고 불리는 이 사내는 몸집이 곰처럼 커다랗고 말수는 침묵만큼 적다. 뱃사람들로부터 호크에 관한 이런저런 소문을 주워 듣던 소년이 그날 밤 호크에게 다가가 그 모든 이야기가 진짜냐고 묻는다. 그렇게 시작된 호크의 이야기... 스웨덴 출신인 그의 진짜 이름은 호칸 쇠데르스트룀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호칸은 형 리누스와 함께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하지만 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형을 놓쳐버렸고, 겨우 잡아탄 미국행 배는 그를 뉴욕이 아닌 샌프란시스코로 데려간다.


일단 형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호칸은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향하는 대여정을 시작한다. 마음은 절박하지만 돈도 없고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지리도 모르는 그는 그저 걷고 또 걸을 뿐이다. 그렇게 걷다가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기도 하고, 오해를 사서 수모를 당하기도 하고, 은인을 만나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사랑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렵게 손에 넣은 것을 잃거나 빼앗기는 일을 반복하면서 그는 결코 뉴욕에 도착해 형을 만나는 기적은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체념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얼마 후 그와 언어도 통하고 그를 원하는 곳으로 보내줄 수 있는 재력과 수단을 지닌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먼 곳에서>는 2023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트러스트>의 작가 에르난 디아즈의 데뷔작이다. <트러스트>도 좋았지만 <먼 곳에서>가 훨씬 더 좋았는데, 호칸이 느끼는 물리적 고립감이나 정신적 고독감이 점차 해소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고 점점 심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 소년 정도였던 호칸은 이후 점점 몸이 자라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누명까지 쓰면서 사람들을 피하고 스스로를 격리하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나 이토록 어두운 호칸의 삶에도 잠깐이나마 빛을 드리우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빛의 파장이 유난히 길고 아름다워서 이 거칠고 고단한 이야기를 계속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종교다. 모든 살아 있는 것 사이에 연대가 있다는 걸 아는 것 말이야. 이것을 이해하면 애도할 건 아무것도 없다. 그 무엇도 유지할 수 없다 한들, 잃어버리는 것도 없으니까. 상상이 되니? 그 안도감이, 그 자유가." (125쪽) 호칸에게 의술을 가르쳐준 의사의 말처럼, 모든 살아 있는 것 사이에는 연대가 있으며 연대에 속하지 않은 존재는 단 하나도 없다. 하다 못해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과 마시는 물조차 생명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매순간 생명과 연결되어 있고 다른 생명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그러니 철저히 고립되어 있고 고독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실제로 그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호칸 역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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