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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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나는 내내 어린이로 살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른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어른이 되면(나이가 들면)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여자이고, 여자가 어른이 된다는 건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는 건데, 둘 다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장 내 주변의 아줌마, 할머니들만 봐도 삶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드물었고,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그리는 아줌마, 할머니의 모습은 대체로 시끄럽고 억척스럽고 유난스럽고... 하여간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지, 애초에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인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내가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동안, 세상이 많이 바뀐 건지 아니면 내 시야가 많이 넓어진 건지, 닮고 싶은 어른들이 많아졌다. 최근 몇 년 동안 나에게 가장 많은 자극을 주는 어른은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인데, 얼마 전 출간된 김하나 작가님의 어머니 이옥선 작가의 산문집 <즐거운 어른>을 읽고 또 한 명의 롤모델을 얻었다. 사실 이옥선 작가님의 이력만 보면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옥선 작가님은 1948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진주에서 3년 정도 교사 생활을 하다가 결혼과 함께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아들과 딸을 키웠다. 나와는 겹치는 면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자식들 다 키워서 내보내고 남편마저 타계한 후 본의 아니게(?) 싱글 라이프를 살고 있는 이옥선 작가님의 일상은 내가 꿈꾸는 노년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다. 일주일에 세 번 요가를 가고 한 번은 친구들과 산에 가고 일요일엔 헬스장에 간다, 매일 목욕탕에 가서 자주 오는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수다도 떨며 일종의 사교 활동을 한다, 저녁에는 유튜브나 또 다른 매체로 강연을 듣거나 책 소개를 듣고, 관심 있는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취향이 아닐지라도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새로 나온 책이나 해외 음악도 들어보는 일상이 참 소박하면서도 단정하게 느껴진다.


여자니까, 노인이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는 것이 아니라, 참지 않고 하는 면도 멋있다. '제사란 결국 남의 집 딸들 데려다가 자기(남자)들 조상 섬기는 것이다',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다' 같은 문장을 읽을 때에는 내 속이 다 시원했다. 헤밍웨이, 사르트르, 폴 오스터 등 유명하지만 인성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백인 남성 작가들을 일갈하는 '야! 이노무 자슥들아'라는 글은 이 책의 백미이니 꼭 읽어보기를. '뭔가 더 발전해 봐야 지구만 망가진다'는 작가님의 말씀을 유념하며(과연 '만다꼬' 정신의 원조답다), 오늘도 (남들 보기) 좋은 어른보다는 즐거운 어른으로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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