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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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여자'한 외모를 지닌 나리는 나이를 불문하고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도망치듯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딸 은채를 키우며 살던 나리는 집에서 캔들 공방을 운영하다 상가로 진출했는데 하필 팬데믹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는다. 월세는 내야 하는데 수강생은 급감하는 와중에 나리공방에 드나들던 수미가 확진 판정을 받고 이동 경로가 공개 되면서 나리공방의 상황은 더욱 더 절박해진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기초가 된, 최은미 작가가 2020년에 발표한 단편 <여기 우리 마주>의 줄거리이다. 이어서 더 쓴 부분을 엮은 장편소설 <마주>는 <여기 우리 마주>보다 훨씬 더 다채로우면서도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수미의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나리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다. 결과는 다행히 음성인데, 피 검사 결과 잠복결핵균이 있는 것이 드러난다. 결핵이라는 단어를 듣고 나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나리의 부모님은 대전으로 이사하기 전에 다른 지역에서 과수원을 운영했다. 수확철이 되어 일손이 부족해질 때마다 부모님은 '만조 아줌마'라는 분을 불렀는데, 나중에 나리는 방학이 되면 일주일에 한 번씩 만조 아줌마네 집에 가서 지낼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나리의 결혼식에도 와주었던 만조 아줌마가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뭘까.


한편 나리는 수미가 격리 시설로 들어가기 전에 딸 은채가 보여준 영상 속 화면을 생각한다. 같은 딸 하나 엄마인 나리와 수미는 일 때문에 바쁠 때마다 서로의 딸을 돌봐주며 자매 이상으로 친하게 지냈다. 학창 시절에도 절친한 동성 친구 하나 없었던 나리로서는 처음 사귄 동성 친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은채가 보여준 영상 속의 수미는 나리가 아는 수미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게다가 그 영상을 보낸 사람은 수미의 딸 서하다. 나리는 수미에게서 서하를 보호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모녀 관계를 떠올리며 불편함을 느낀다. 어쩌면 지금 자신이 과거의 만조 아줌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만 보면 팬데믹 시대의 자영업자의 애환과 모녀 사이의 애증을 다룬 소설 같은데,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결핵 환자라는 이유로 사람들과 섞여 살지 못하고 따로 격리되어 살았던 사람들의 공동체인 '딴산마을'과 팬데믹 당시 사망률이 일반 병원의 2배 이상이라서 '코로나 무덤'으로 불리기도 했던 장기 요양병원 문제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힘든 시기에 더 힘든 사람들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자기 자신도 힘들면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었던 만조 아줌마 같은 사람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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