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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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다섯 살인 '나'는 오랜만에 대학 시절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대화 도중 '나'는 에번의 친구가 자신의 집에 침입한 10대 소년을 총으로 쏴서 죽이게 된 사연을 듣게 되고, 친구들은 그들 중 유일하게 자식이 있는 '나'에게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그 순간 '나'는 이십 년 넘게 알고 지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며 가치관이 비슷하다고 여겼던 친구들과 자신이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고 느낀다. 달라진 것은 친구들일까 나일까. 무엇이 그토록 비슷했던 그들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 <사라진 것들>에는 로 백인 고학력 중산층 기혼 유자녀 남성이 인생의 중반에 이르러 그동안 자신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불안과 걱정, 후회와 미련 같은 감정을 느끼는 내용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백인 고학력 중산층 기혼 유자녀 남성이면 인류 전체를 통틀어 최상위 스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소설 속 남자들은 자신의 삶을 불안하게 여기고 시종일관 걱정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 단편 <오스틴>의 주인공 남성은 남의 집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총을 맞고 죽은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년의 부모의 감정에 이입해 자기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넝쿨식물>의 주인공 남성은 전 여친 마야가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화려했던 그들의 청춘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한다. <첼로>의 주인공 남성은 첼리스트이자 대학 교수인 아내 나탈리가 파킨슨 병으로 의심되는 증상을 보이면서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성공이 보장된 듯 보였던 그들의 미래가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숨을 쉬어>의 주인공 남성은 어린 아들이 수영장에서 놀다가 익사할 뻔한 일이 있은 후 수시로 공황 상태에 놓인다. <실루엣>의 주인공 남성은 정년직 교수 임용에서 탈락한 후 주변 동료들을 믿지 못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백인 고학력 중산층 기혼 유자녀 남성으로서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위치에 있지만 언제 어디서든 자신 또는 가족에게 질병이나 사고, 범죄 등이 일어나 불시에 삶이 무너질 수 있다고 느끼면서 경계하고 불안해 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이 소설집에는 자주 나온다. 이른바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에 대해 그린 걸로도 볼 수 있지만, (백인 고학력 중산층 기혼 유자녀 남성도 공포를 느낄 만큼) 지금의 미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회적 안전망이 취약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방증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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