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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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어딘가에 원래는 나였지만 지금은 내가 아닌 존재가 있다면 어떨까. 게다가 생애 주기의 어떤 시기에 도달하면 다시 그 존재와 몸을 합쳐야 한다면. 우다영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의 첫 번째 소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가 바로 그러한 상황을 그린다. 이 세계에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것이 있다. 이들은 원래 한 몸으로 태어나 트윈으로 분리되어 살다가 열여덟 살 생일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면서 한 몸이 된다. 알파인 '나'는 자신의 분신인 오메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기도 하고 오메가와 결합하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기도 하면서 오메가와의 결합을 기다린다. 


그런데 열여덟 살 생일이 되어도 오메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어떻게 오메가를 찾아서 집으로 끌고 오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성격이나 취향도 맞지 않아 이 상태로 결합하면 재앙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는 불길한 예감만 든다. 그러나 오메가와 결합하지 않으면 완전한 성인이 될 수 없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전개만 보면 결혼에 대한 비유인가 싶은데, 알파와 오메가가 원래는 한 몸이고 결합 후 다시 한 몸이 된다는 점에서 개인과 개인의 결합인 결혼보다는 개인 안의 서로 다른 인격 또는 자아의 충돌과 화합을 그린 이야기로 읽혔다.


이어지는 단편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은 남태평양의 사모아제도에서 '아즈깔'이라는 식물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 풀의 독성에 감염된 사람은 자신이 환생하기 전의 모든 생과 환생한 후의 모든 생을 기억하게 된다. 그 결과 감염자들은 어떤 사건의 인과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게 된다. <긴 예지>는 여섯 살 쌍둥이 자매의 베이비 시터인 효주가 어떤 게임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연루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 외에도 SF 또는 판타지의 요소가 결합된 기발하면서도 환상적인 내용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문장도 좋아서 앞으로 이 작가의 책을 계속 따라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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