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기념일
사이토 하루미치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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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 장애가 있는 부모는 어떻게 갓난아기를 키울까. 궁금하다면 사이토 하루미치의 책 <서로 다른 기념일>을 읽어보길 권한다. 저자 사이토 하루미치는 1983년 도쿄에서 태어나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선천적 난청으로 중학생 때까지 일반 학교를 다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농학교에 다녔고, 그곳에서 만난 마나미와 결혼해 첫 아이 이쓰키를 얻었다. 이 책은 둘 다 농인인 부부가 청인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경험한 일들과 생각한 것들을 일상 에세이 느낌으로 담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저자는 자신이 청인 중심인 사회에 잘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진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등 장애가 없는 사람도 좀처럼 해내기 힘든 삶의 과제들을 순조롭게 완수했으므로 청인과 다를 것이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갓난아기를 기르면서 그러한 믿음이 무너졌다. 농인 부모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청인 부모는 아기의 울음소리로 아기가 지금 졸린지 배가 고픈지 안아 달라는 건지 구분한다는데, 농인 부모는 그럴 수 없다. 밤중에 아기와 함께 자다가 아기에게 위험한 상황이 벌어져도 농인 부모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저자 부부는 온갖 방법을 고안해내기 시작했다. 낮에는 아기의 얼굴을 보면서 표정 읽는 연습을 하고, 수시로 아기의 위치를 확인했다. 밤에는 주기적으로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30분마다 진동이 울리도록 설정한 휴대전화를 속옷 속에 넣고 잤다. 아기가 위험한 행동을 할 때 청인 부모는 아기에게 "안 돼", "하지 마"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농인 부모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저자 부부는 표정이나 몸짓으로 전달했다. 예를 들어 아기가 장난감을 입에 넣으면 저자도 입에 장난감을 넣고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아기가 이해하고 더는 하지 않았다.


"네가 들은 것. 그것을 나는 바로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한다. 그다음에는 상상한다." (67쪽)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과 사람이 의사 소통을 하는 방법은 말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글이나 그림, 사진 같은 이미지로도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표정이나 몸짓 같은 비언어적 표현도 언어로서 기능할 수 있다. 농인 부모들이 아이와 의사 소통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아이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청인 부모들이 보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청인들은 말을 할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이 알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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