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
이순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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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어르신들 아무나 한 분 붙잡고 그분의 살아온 이야기를 받아쓰면 책 한두 권은 금방 나올 거라는 내용의 대화를 누군가와 나눈 적이 있다. 책 쓰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이 절대 아니고, 김연아나 손흥민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을 해낸 사람들만 특별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도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가지고 무언가를 극복하기도 하고 어떤 일을 성취하기도 하면서 그 누구의 삶과도 똑같지 않은 비범한 인생을 살아 왔고, 살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순하 작가의 산문집 <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를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이 책을 쓴 이순하 작가는 1958년생이다. 결혼 후 남편과 두 딸을 다 키우고 난 다음에야 공부를 시작해 환갑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 사회복지 전공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서전 쓰기를 가르치는 '글마음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하다. 저자 자신의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은 특히 저자의 가족들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담고 있다. 나의 어머니가 1959년생이기 때문에 50년대 후반에 태어난 여성의 삶이 어떠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이야기는 나의 어머니가 겪은 이야기와도 사뭇 달랐다. 


아들을 못 낳고 딸을 낳았다고 구박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딸을 죽이기도 했던 시대에 저자는 둘째딸로 태어났다. 실향민 출신인 아버지는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처자식을 잊지 못했고, 그 핑계라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여자들을 만나 살림을 차리고 다녔다.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었고, 그 때부터 어머니는 생계 전선에 나섰다. 형제 중 둘째이지만 몸이 약한 언니를 대신해 장녀도 아닌 저자가 'K-장녀' 노릇을 해야 했다. 어른도 하기 힘든 심부름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고, 학교에서 갖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런데도 부모를 원망하기는커녕 "젊었을 적 소원은 원도 끝도 없이 돈을 많이 벌어 엄마를 호강시켜드리는 것"이었다니. 같은 K-장녀이지만 고개가 숙여진다. 


책 제목에 '엄마'라는 단어가 들어 있지만 엄마 이야기만 나오는 건 아니다. 이모, 외삼촌, 외할머니 등 친척은 물론이고, 띵까 영감, 윤초시, 애자씨 등 혈연 관계는 아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들이 줄줄이 나온다. 그래도 가장 대단한 인물은 어머니이다. 저자의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 청년기를 지나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주부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저자의 어머니 또한 평범한 한국의 할머니로 살았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반전이 있으니 이건 꼭 책에서 확인하시길. 생각해 보면 주부에서 교수가 된 저자의 인생도 한 편의 영화 같으니, 과연 모전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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