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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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의 여름. 한 여고생이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여고생을 범인 죽인으로 두 남학생이 지목되는데, 한 명은 여고생이 죽기 전 함께 차를 타고 있는 모습이 목격된 남학생이고, 다른 한 명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두 사람을 목격한 남학생이다. 경찰은 이중에 한 명을 범인으로 추정하지만 강력한 증거는 없다. 그렇게 끝내 범인을 밝히지 못한 채 4년의 시간이 흐르고, 죽은 여고생과 같은 반이었던 여학생이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계단에서 뜻밖의 얼굴을 보게 된다. 죽은 여고생과 닮은 듯 다르게 보이는 여자 후배의 정체가 그를 놀라게 하고, 그렇게 또 다시 시간은 흐른다.


권여선 작가가 201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레몬>은 (제목만 보고 상큼한 이야기를 예상했던 나로서는) 뜻밖에도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물에 가깝다. 평범한 구성도 아니다. 이 소설은 크게 사건이 발생한 2002년, 사건이 재조명되는 2006년, 관련자들의 후일담이 펼쳐지는 2015년 이후의 이야기로 나뉜다. 각각의 이야기는 사건의 중심에 있는 세 여성 - 다언, 상희, 태림 - 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를 통해 각 인물이 감추고 있는 진실과 거짓을 다양한 각도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사건의 실체도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물에 가깝다고 평했지만, 이 소설의 목적이 범인 찾기에 그치는 건 아니다. 사건의 피해자인 여고생은 뭇 남성들이 동경하고 여성들은 질투하며 그를 낳은 엄마마저 두려워할 정도로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예쁘다는 건 그 자체로 나쁜 일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의 감정에 동요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관계를 망가트릴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선 그저 좋다고만 할 수 없다. 실제로 피해 여고생은 자신의 외모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에서 '목소리'로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 - 다언, 상희, 태림 - 은 어떻게 보면 사건의 가해자이거나 방관자이지만, 피해자인 면도 있다. 아름다운 인간의 존재는 그 자체로 주변 인간들을 덜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고 그들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겉보기엔 아름답지만 속에 담긴 건 달콤하지 않고 시큼한 레몬인 걸까. 레몬처럼 거리를 두고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 가면 향기롭지만 맛을 보면 시거나 쓴, (미모뿐 아니라) 인간이 탐내는 많은 가치들과 그것들의 위험성을 신선한 방식으로 표현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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