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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5월
평점 :

한국의 1960년대, 70년대가 배경인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이 심심찮게 나온다. 아마도 집안의 남자 형제의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자기 자신은 학업도 제대로 못 마치고 서울이나 인천 등지로 와서, 공장에서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과 하루 열몇 시간씩 노동을 하고 급료를 받으면 거의 그대로 집에 보내는 그런 여성들. 이제는 여성의 대학 진학률도 높아지고 전문직, 공직, 대기업으로의 진출도 활발해져서 더는 그런 여성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말 그럴까. 이런 생각에 반기를 드는 책이 소설가 이서수가 2023년에 발표한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이다.
첫 번째 단편 <미조의 시대>의 주인공 미조는 변변찮은 직장을 전전하다 지인의 소개로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웹툰 회사의 경리로 취직한다. 미조가 다니는 회사에서 웹툰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수영은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내용의 19금 웹툰을 그리다 원형 탈모를 얻는다. 수영은 미조에게 1970년대에는 여기(구로)에 가발 공장이 있었다는 말을 들려주며 - 가발이 19금 웹툰으로, 공장이 세련된 고층 빌딩으로 바뀌었을 뿐 - 그 시절과 지금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과 이 사회가 얼마나 많은 젊은 여성들의 노동으로 유지되어 왔는지를 상기시킨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을 관통하는 키워드 하나가 노동이라면 다른 하나는 부동산이다. 미조의 가족은 아버지가 평생 일해서 모은 돈 5천만 원으로는 서울에서 반지하 집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나의 방광>에 등장하는 무주택자 부부는 무주택자인데 치솟는 집값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신체 질환을 얻는다. 그렇다고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오른 집값이 다시 떨어질 리는 없고, 부부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물리적인 집' 대신 '정신적인 집'을 가꾸는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가 젊은 사람들의 '갓생' 열풍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발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