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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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언제부터인가 자주 듣는 인사말이다. 상대는 분명 좋은 뜻으로 그 말을 했을 것이고, 그 말을 듣는 나도 결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삶을 누가 원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편으로 일은 인간의 경제적 지위를 상승시키고 사회적 자아를 성립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일하지 않고 벌이도 없는 삶보다는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삶이 차라리 나은 이유다(슬프게도...).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에 실린 작가 후기에 따르면 작가는 이 소설을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 작가에 따르면 그동안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문학 작품이 수없이 발표되었지만 그중에 한국의 산업 노동자들을 다룬 소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작가는 다양한 직군의 산업 노동자 중에서도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철도 노동자들의 삶에 주목했다. 소설은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평생 공장 노동자로 일했고 현재는 사측에 맞서 고공농성 중인 이백만의 증손 이진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산업 노동자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가난한 조선인 이백만은 어릴 때부터 여관, 정미소 등에서 일하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뛰어난 손재주와 성실함을 인정받아 철도청 기술자가 된 백만은 자신의 두 아들을 철도 기관사로 키워낼 꿈을 품는다. 장남인 일철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열심히 공부해 순조롭게 철도 기관사가 되었지만, 차남인 이철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독립 운동에 투신해 집안의 근심 거리가 된다. 일철은 조선인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기 힘들었던 시절에 철도청 직원이라는 안정적인 지위를 가진 것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노동이 일본인들의 부를 늘리고 조선인들을 착취하는 데 쓰이는 것에 회의감을 품는다. 

 

이 소설은 아버지에서 아들, 손자, 증손자로 이어지는 부계 혈연 중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인 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비중이 적지도 않고 여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이백만의 아내 주안댁은 혼자 힘으로 장사를 시작해 집안을 일으킨 생활력 강한 인물이고, 이일철의 아내 신금이는 시동생 이철과 함께 노동운동을 한 신여성이다. 이이철의 아내 한여옥은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독립운동가 '안옥윤'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며, 이지산 아내 윤복례는 한국 전쟁 직후 아무것도 없을 때 시장에 좌판을 벌이고 옷장사를 해서 생계를 부양했다. 이런 식으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여성들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점을 누락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 소설은 한국의 실제 근현대사를 바탕으로 하는 역사 소설이지만, 약간의 판타지적인 요소가 들어 있어 독자의 흥미를 높인다. 이 소설은 사십오 미터 높이의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이진오가 과거에 집안 어른들로부터 들은 옛날 이야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회상의 계기가 되는 것이 바로 이진오가 보는 환상이다. 이집오의 집안 사람 중에는 이진오처럼 보여선 안 될 것이 보이거나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인물이 몇 명 있어서 이들의 활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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