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슐러 K. 르 귄의 말 - 상상의 세계를 쌓아 올리는 SF 거장의 글쓰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어슐러 K. 르 귄.데이비드 네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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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 특히 여성 작가를 발견하는 데 있어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만큼 유용한 책이 없는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어슐러 르 귄의 말>의 주인공 어슐러 르 귄에 대해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다. 이를테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기 전 나름 오랜 무명 기간을 겪었다는 것, 도교와 불교 등 동양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불교의 경전인 <금강경>을 번역하기도 했다) 등이다.


이 책은 작가 데이비드 네이먼이 어슐러 르 귄을 총 세 번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각각의 인터뷰는 어슐러 르 귄의 소설, 시, 논픽션을 주제로 한다. 어슐러 르 귄이 소설과 에세이를 쓴 건 알았지만 시를 쓴 건 전혀 몰랐다. 어슐러 르 귄에 따르면 작가의 스타일은 리듬으로 만들어지며, 리듬을 학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다. 언어는 결국 소리이므로, 소리의 특성을 무시하는 글은 좋은 글이 되기 어렵다.


작가에게 있어 문법은 중요하지만, 문법이 곧 당위성 또는 도덕성인 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문장 수준에서 여성이 지워지는 문제다. 가령 영어에서 남성을 의미하는 단어 man은 사람, 인간을 가리키는 단어로도 쓰이지만,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 woman은 그렇지 않다. 어슐러 르 귄이 1968년 고정된 성 개념이 없는 행성을 무대로 한 소설 <어둠의 왼손>을 발표했을 때 주어를 he로는 쓸 수 있지만 she로는 쓸 수 없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he나 she로 지칭할 수 없는 개인을 they로 지칭할 수 있게 된 요즘은 해당 작품의 주어를 they로 하여 출간되고 있다고 한다.


어슐러 르 귄은 정치적으로 전쟁과 폭력에 반대할 뿐 아니라 창작에 있어서도 전쟁이나 폭력과 관계된 표현을 지양한다. '갈등이 창조를 낳는다', '삶은 전쟁이다' 같은 상투적인 표현도 갈등을 당연시하고 전쟁을 미화한다고 보아 경계한다. SF와 판타지 문학을 하나의 장르로 평가절하하는 관점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문학은 원래 신화, 전설, 민담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 어떤 작품을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깎아내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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