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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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문학적 기원이 일본 문학이 아니라 미국 문학임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좋아하는 미국 작가로는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를 여러 번 언급했는데,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기획과 편집, 해설을 맡은 피츠제럴드의 후기 작품집 <어느 작가의 오후>가 출간되어 읽어보았다. 읽어보니 피츠제럴드의 팬은 물론 하루키의 팬 또한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츠제럴드는 1896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문학과 연극 활동에 열중했으며, 1925년 <위대한 개츠비>를 발표해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후 아내와의 불화, 술 중독, 신경쇠약과 우울 등에 시달렸고, 결국 <위대한 개츠비>를 뛰어넘는 걸작을 남기지 못한 채 1940년 타계했다. 이 책에는 피츠제럴드가 자신의 말년인 1930년대에 발표한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각각에 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설이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린 소설은 피츠제럴드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 <밤은 부드러워라> 등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암울한 대도시 상류층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멋지고 아름다운 커플들은 종국엔 서로 원수가 되어 헤어지고, 고독을 피하기 위해 사교 활동을 거듭할수록 칩거의 필요성을 느낄 뿐이다(<이국의 여행자>). 자기애에 빠진 사람들의 연애는 칭찬과 인정을 갈구하고 무관심과 지적에 날 세우다 서로 지쳐 나가떨어지면서 끝이 난다(<사람이 저지르는 잘못>).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사소설'이라는 평이 있을 만큼 작가 자신의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지만, 이번에 피츠제럴드의 에세이를 읽어 보니 그의 에세이와 소설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의 잃어버린 도시>라는 글에서 피츠제럴드는 1920년대에 엄청난 속도로 팽창했던 뉴욕의 경제와 대공황 이후 급변한 사회 분위기를 대조적으로 묘사한다. "결국 뉴욕은 하나의 도시일 뿐, 우주가 아니었다는 오싹한 깨달음과 함께, 내가 상상 속에서 키워온 그 빛나는 거대한 구조물이 통째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라는 문장에서 뉴욕을 개츠비 또는 데이지로 바꿔도 무방할 듯하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의 앞 장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 "그는 머리가 아니라 펜 끝으로 깊이 생각하는 듯하다."라고 감탄과 찬사를 보내는 팬의 모습과 "억누르지 못하는 자기과시 욕구야말로 이 사람의 개인적인 약점이었다."라고 신랄하게 평가하는 비평가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피츠제럴드가 세상을 떠난 나이인 마흔네 살이 되었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가 느낀 감정을 서술한 엮은이의 글도 좋았다. 피츠제럴드의 책을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따라 소설가가 된 독자이기에 더욱 깊이 공감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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