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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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은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처음으로 선보인 SF 소설집이다. 미야베 미유키가 미스터리 한 장르만 고집하지 않고 오컬트, 판타지, 시대물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온 건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SF 소설에 도전하다니. 미야베 미유키의 오랜 팬으로서 매우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첫 번째 단편부터 매우 만족스러웠다. (장편 소설로 써주시면 안 될까요?) 


첫 번째 단편 <엄마의 법률>은 '마더 법'이라는 법이 제정된 근미래가 배경이다. 마더법은 아동이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면 정부가 바로 구제해 학대당한 기억을 지우고 최적의 입양처를 찾아주는 법 제도다. 16세 여고생 후타바는 4살 때 마더법에 따라 겐이치 아빠, 사키코 엄마에게 입양되어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사키코 엄마가 죽자 마더법에 따라 '그랜드 홈'이라는 시설에 돌려보내진다. 사랑하는 가족과 강제로 헤어지게 된 후타바는 불만이 많다. 


소설 초반에는 법을 적용당하는 개인의 의사에 반해 정부가 친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을 보고 작가가 의문을 제기한 것은 부모와 정부 중에 어느 쪽이 친권을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친권 자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권(親權)은 단어 뜻 그대로 부모의 권리인데, 후타바의 부모처럼 자식을 학대하고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부모에게도 부모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는 걸까. '인권은 인간에게 과분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친권도 어떤 부모들에게는 과분하지 않나. 


두 번째 단편 <전투원>은 녹내장을 앓는 80대 노인 후지카와 다쓰조가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사는 소년이 방범 카메라를 훼손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시작된다. 후지카와는 소년의 '장난'을 막으려고 동네에 설치된 방범 카메라를 주의 깊게 보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도 방범 카메라 위치가 자꾸만 바뀌고 그때마다 동네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 소설도 반전이 있는데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세 번째 단편 <나와 나>는 40대 독신 여성인 '나'가 오랜만에 본가에 방문했다가 10대 시절의 '나'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미래에 닥쳐올 불행을 모르는 철부지 여고생인 과거의 '나'는 마흔이 넘었는데 결혼도 안 하고 직장도 변변찮은 미래의 '나'를 한심하게 여긴다. 타임 슬립물은 대체로 미래에 사는 사람이 과거로 가는데, 이 소설은 과거에 사는 사람이 미래로 오는 점이 특이하다.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는 과거의 자신과 사이좋게 지낼 생각은 없다"라는 미래의 '나'의 대사가 좋았다. 


표제작 <안녕의 의식>은 폐기된 로봇을 수거하는 일을 하는 로봇 기사와 노후된 로봇 '하먼'을 가져온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먼'은 "수다 비즈니스"로 돈 버는 데 한계를 느낀 정보통신업계가 살림과 육아, 간병 등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한 가정용 로봇이다. 갓난아기 때부터 하먼이 키운 것이나 다름 없는 소녀는 하먼을 감정 없는 기계로 여기지도 않고, 여기저기 고장도 많고 더 이상 수리할 수도 없으니 폐기시키자는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반면 고아로 자라서 친구도 없고 연인도 없는 로봇 기사는 로봇이면서 인간에게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하먼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폐기되기 직전까지도 소녀에게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받는 하먼을 보며 급기야 로봇 기사는 "나는 로봇이 되고 싶다."라고 읊조린다. 인간이지만 기계를 부러워 하는 로봇 기사를 보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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