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들 순간들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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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들 순간들>은 배수아 작가가 15년 전부터 머물고 있는 베를린 인근의 한 정원 딸린 오두막에서의 생활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이 오두막은 동네 주민들도 잘 모를 만큼 외진 곳에 있어서 독서와 집필에 몰두하기에는 최적의 공간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저자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인물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요리를 하고, 아주 가끔 외출을 하거나 손님을 초대한다.


배수아 작가의 글 하면 소설이든 에세이든 어렵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다행히 이 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한 소설가가 그중에서도 깊은 정이 든 공간에서 소중한 사람과 보낸 한 시절을 귀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주는 듯해 오히려 다정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장소는 다르지만 작가님도 나처럼 집에서 책 읽고 집 근처 호수를 산책하는 조용하고 안정된 생활을 좋아하신다니 반가웠다(그러실 것 같았지만).


바흐 연주를 들을 수 있다고 해서 도보로 연주회장에 가다가 뜻하지 않은 체험을 한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 집에서 연주회장까지 10km 밖에 안 된다는 말만 믿고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섰는데 점점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눈에 보이는 것은 군사 시설처럼 보이는 짓다 만 콘크리트 건물뿐일 때, 얼마나 공포스럽고 불안했을까. 그러다 마침내 익숙한 황금빛 밀밭이 보였을 때는 안도감 정도가 아니라 황홀감까지 느껴지지 않았을까(길을 잃어본 적이 많아서 더 깊이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과 스위스 실스마리아에 다녀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실스마리아라고 하니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가 떠올랐고, 그곳의 풍경과 작가님의 오두막이 있는 곳의 풍경이 꽤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에도 두 사람이 작은 집에서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하고 산책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극적인 사건이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느낌이 이 책과도 비슷하다.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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