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와 에밀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8
도리스 레싱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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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자기 자신만큼이나 글감으로 즐겨 쓰는 주제가 '부모'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와 <한 여자>는 각각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쓴 책이다.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언급을 좀처럼 하지 않다가 2020년 발표한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에 처음으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썼다. 그만큼 작가에게는 쓰고 싶고, 써야 하는 존재가 부모인 것 같다. 


도리스 레싱의 <앨프리드와 에밀리> 역시 작가 자신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구성이 독특하다. 제1부는 부모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사건인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쓴 소설(픽션)이다. 전쟁 전 앨프리드는 운동을 잘하고 고향에서 농사 지으며 사는 게 꿈인 순박한 청년이었다. 에밀리는 고향을 떠나 런던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저명한 의사를 약혼자로 둔 꿈 많은 여자였다. 그랬던 두 사람이 전쟁을 겪지 않고 순탄하게 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상대방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훨씬 더 만족스럽고 행복했을 거라고 작가는 상상한다. (부모가 서로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상상하는 딸의 마음이란...) 


제2부는 앨프리드와 에밀리가 실제로 경험한 삶(논픽션)이다. 전쟁 중에 병원에서 부상병과 간호사로 만나 결혼한 앨프리드와 에밀리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로디지아(현 짐바브웨)로 이주해 농장을 경영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정부 선전에 혹해 그곳으로 떠난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니 농사는커녕 인프라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아 기본적인 생활도 힘든 상태였다. 자연을 좋아하는 앨프리드와 문명을 선호하는 에밀리는 끊임없이 불화했다. 결국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힘든 상황이 된 이들 가족은 정착에 실패하고 도망치듯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점점 소원해졌다. 이렇게 보면 허구의 삶은 행복하고 실제의 삶은 불행하기만 했던 것처럼 보이는데, 막상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평생 고향에서 농사 지으면서 사는 것이 꿈이었던 아버지가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다면 예측 불가능한 사건 사고 없이 평탄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았겠지만, 아프리카 대륙에 실제로 가서 그곳의 대자연을 체험하고 원시 문명을 목격하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도 의사인 약혼자와 결혼해 사교계의 유명 인사로 살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행복했겠지만 그 나름의 불만도 있었을 것이다. 


도리스 레싱은 자신의 삶 못지 않게 자신의 부모의 삶을 반영한 소설을 많이 썼다. 대표적인 예가 데뷔작 <풀잎은 노래한다>인데, 도시 생활을 동경하는 여자가 가난한 시골 농부와 결혼하면서 불행해지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이제 보니) 작가의 부모인 앨프리드와 에밀리의 젊은 시절과 결혼 초기 이야기 그 자체다. <마사 퀘스트>는 아프리카에서 보낸 청소년기, 그 중에서도 어머니와의 갈등을 다룬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들었다. 이 소설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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