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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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의 소설 <두고 온 여름>은 부모의 재혼으로 형제가 된 기하와 재하의 이야기를 그린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기하가 열아홉 살, 재하가 열한 살 때다. 기하는 어릴 때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사진관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왔다. 어느 날 아버지가 재하 모자를 집으로 데려오기 전까지는 완전하지는 않아도 불만 없는 나날을 보냈다. 


기하는 재하 어머니가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닮은 것도 기막힌데, 생전 처음 보는 남자애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잘 돌보라고 하니 황당하다. 재하는 재하대로 기하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상처 주는 모습을 보기 싫고, 아토피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갈 때마다 기하의 도움을 받는 게 불편하다. 기하 아버지와 재하 어머니는 첫 번째 결혼의 미완 또는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새롭게 이룬 가족을 더 잘 꾸려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기하는 더 엇나간다. 


결국 이들 가족은 헤어지게 되고, 기하와 재하는 한동안 서로를 잊고 지낸다. 이따금 함께 살았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도 꾹꾹 누른다. 그러던 어느 날 기하가 재하를 발견한다. 마지막 만남 이후 십오년이 흐른 시점에 '스트리트 뷰'를 보다가 우연히 재하 모자의 모습을 찾은 것이다. 기하는 어차피 할 일도 없고 재하 모자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해서 그들이 운영하는 중식집을 찾아간다. 무슨 말을 하거나 듣고 싶은지 자신도 정확히 모르는 채로 무작정 간다. 


같이 살았을 때에도 끝내 친해지지 못했던 기하와 재하는 여전히 서먹서먹하다. 한쪽이 용기를 짜내 말을 해도 좀처럼 길고 진지한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러나 짧은 대화와 단절된 문장을 통해 두 사람은 같은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런 사람은 서로 밖에 없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는다. 젊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어렸던 기하와 재하가 함께 지냈던 날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온 세상에 단 둘뿐인 것이다. 


기하와 재하는 혈연이 아니므로 형제도 가족도 될 수 없다고 믿었지만, 돌이켜보면 두 사람은 한 집에 살면서 같은 부모를 공유하고 형제나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과 기억을 가졌다는 점에서 진짜 형제, 진짜 가족과 다름 없다. 기하와 재하가 이후에 다시 만날지 연락을 주고 받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진짜 형제, 진짜 가족의 그것이기에 결말을 읽고 마음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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