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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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마부키 사토시 주연 영화 <한 남자>가 곧 개봉할 예정인데, 원작이 2020년에 출간된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이라는 말을 듣고 뒤늦게 구입해 읽었다. 원작을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영화 줄거리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도 주인공 '기도'가 재일 교포 3세인 것으로 굳이 설정한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일본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정도 되는 유명 작가가 재일 교포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전례가 있던가. 히라노 게이치로 정도 되는 작가는 재일 교포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등등이 궁금해서 읽었고,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1975년생 재일 교포 3세 변호사인 기도 아키라는 몇 년 전 이혼 소송을 담당했던 옛 의뢰인 리에로부터 또 다른 의뢰를 받는다. 리에는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만난 다이스케라는 남자와 재혼하고 딸 하나를 두었는데, 사고로 남편이 죽고 신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남편이 가짜 이름, 가짜 신분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남편이 가짜 이름, 가짜 신분으로 살아온 이유는 무엇인지, 그의 진짜 이름, 진짜 신분은 무엇인지 알아봐 달라는 리에의 부탁에 기도는 변호사로서의 의무 이상의 흥미를 느끼고 파고들기 시작한다. 


기도가 이 사건에 흥미를 느끼는 개인적인 동기는 재일 교포 3세인 자신의 신분과 관련이 있다. 기도는 스스로를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진로를 결정하거나 결혼 승낙을 받는 과정 등에서 자신이 재일 교포임을 강하게 의식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TV 방송을 통해 간토(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유언비어를 퍼트려 조선인 수만 명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불안감이 훨씬 커졌다. 일본인 아내와의 갈등, 아직 자신에게 조선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어린 아들에 대한 죄책감도 심해졌다. 


리에의 남편의 진짜 이름과 진짜 신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기도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타인의 것과 바꾸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들의 행위는 법적으로 사기에 해당하지만, 각자 범죄자의 자식이라거나 가족으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받는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 아닌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나로서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어쩌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변신' 또는 '변화'에 대한 욕망은 누구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사랑받기 힘든 현실의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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