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 산책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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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산책>은 <내가 말하고 있잖아>로 알게 된 정용준 작가의 소설집이다. 말더듬증을 가진 소년이 언어치료원에 다니면서 겪는 일을 그린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으면서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인물을 묘사하는 태도가 사려 깊고 정중하다고 느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하게 느꼈다. 특히 표제작 <선릉 산책>이 그랬다.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지인의 소개로 발달장애 청년 '한두운'을 하루만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나'는 처음에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지만, 한두운과 한나절 정도를 보내며 소통의 어려움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 정도만 제외하면 한두운도 평범한 청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나'의 생각은 흔들리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한두운과 헤어진다. 이후 '나'와 한두운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2021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미스터 심플>도 좋았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클래식 기타를 구입한 '나'는 물건을 받기 위해 '미스터 심플'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판매자와 약속을 정하고 심야에 무인 빨래방으로 향한다. 물건을 받고 헤어졌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마침 둘 다 빨랫감이 있었고, 세탁이 완료되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미스터 심플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엉겁결에 그의 글을 봐주기로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쓴 글을 아무 대가도 없이 봐준다는 게 마뜩지 않았던 '나'. 하지만 미스터 심플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듣고 연주를 들으면서, 결국 '나'는 자신이 미스터 심플에게 해준 것 이상의 감동과 위로를 받게 된다. 무심하거나 탐탁지 않게 여긴 타인 또는 사건에서 의외의 통찰을 얻게 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선릉 산책>과 결이 비슷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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