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 -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한 지역 안에도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와 덜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나뉘고, 같은 학교 안에서도 잘 사는 집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집 아이들이 갈린다. <최선의 삶>의 강이는 아직 중학생이지만 세상이 이렇다는 걸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강이가 사는 읍내동이 새로 생긴 전민동보다 경제적으로 덜 부유한 사람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읍내동에선 강이네 집이 부유한 축에 속했고, 그렇기 때문에 강이가 위축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강이의 부모가 전민동에 있는 명문 중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위장 전입을 하면서 강이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강이를,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상태인 동급생 소영과 아람이 알아본다. 이들은 방과 후에 종종 어울려 놀다가, 급기야 제대로 짐을 싸고 돈까지 모아서 가출을 감행한다. 집 밖으로 나가면 부잣집, 가난한 집 꼬리표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대한민국에서 부모라는 방패막조차 없는 아이들이 가게 되는 곳은 뻔하다. 결국 집과 학교로 돌아온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과 실패의 책임을 서로에게 지우며 대립한다. 


강이와 소영, 아람이 가출을 하고 몸을 팔고 폭력을 저지른다는 사실만 보면, 이 소설은 이른바 불량 청소년들의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선택과 행태를 묘사하는 내용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이제 겨우 중학생이라는 사실과, 부모와 학교의 감독과 통제를 당하는 입장임을 감안하면, 결국 이들의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선택과 행태는 이들을 감독하고 통제하는 어른들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삶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가출을 했다면 그것은 정말 선택일까.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청소년이 주인공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생각할 거리가 많다.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가족과 직장, 사회 시스템의 규율을 따라야 하는 우리는 과연 '최선의 삶'을 살고 있을까. 모든 사람이 어떤 면에서는 약자, 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약자, 소수자를 무시하거나 차별하며 사는 것은 (강이와 소영, 아람처럼) 최선을 바라다 차선조차 되지 못하고 최악에 다다랐던 경험 때문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차선의 삶 혹은 차악의 삶뿐일까. 소설 내용을 자꾸만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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