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사 1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강명 작가를 좋아하고 범죄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장강명 작가의 신작이 범죄 소설이라는 걸 알고 무척 기대가 되었다. 읽어보니 과연 기대한 대로 좋았는데, 작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읽고 좋다고 느낀 건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이 책의 구성 때문이다. 이 책은 10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홀수장은 범인의 심리를 그리고, 짝수장은 경찰의 (재)수사 과정을 그린다. 집중하기 힘들고 범인이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초독할 때는 짝수장만 읽고 재독할 때는 홀수장과 짝수장을 쭉 읽었다. 이렇게 읽어도, 재밌었다면 괜찮은 거겠지...? 


<재수사>는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형사 연지혜가 22년 전 발생한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면서 시작된다. 2000년 8월 신촌 뤼미에르 빌딩 1305호에 살고 있던 여대생이 시체로 발견된다. 피해자인 여대생은 연세대 인문학부에 재학 중이던 민소림으로, 당시 경찰은 반 년 이상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지만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하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연지혜는 사건을 재수사하는 과정에서 민소림이 당시 대학에서 도스토옙스키 독서모임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모임 멤버들을 만나러 간다. 


대부분의 범죄 소설은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 주목하는데, 이 소설은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에 범죄가 은폐된 과정에 주목한다. 일차적으로는 사건 발생 당시 경찰 수사상의 허점에 주목하고, 이차적으로는 수사 과정에서 그러한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사회 시스템에 주목한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2000년대 초반의 대학 문화가 중요한데, 이때 신자유주의가 대학가의 분위기를 크게 바꿨고, 각 대학이 학부제를 실시하면서 대학 내 문화도 바뀌었다. 같은 학과(학부)라도 서로 잘 모르고, 민주주의나 통일 같은 대의보다는 취업을 위한 학점 경쟁, 스펙 쌓기가 대학생들의 과업이 된 최초의 세대라고나 할까. 


사건 발생 당시 민소림이 속한 대학의 문화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서 범인을 놓친 것이 과거의 문제라면, 사건 발생으로부터 22년이 지나도록 범인을 잡지 못하고 범인이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 둔 것은 현재의 문제다. 범인은 50장(章)에 이르는 독백을 통해 자신이 민소림을 죽인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음을 설명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범인의 범죄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고(당연하다) 범인 스스로 죄의식을 느끼는 데 있어 인식과 판단의 기준이 되는 윤리와 도덕의 부재를 지적한다. 다시 말해, 과거 종교가 담당했던 죄의식의 근거라는 역할을 대체할 만한 것이 현재는 없고, 그 빈 자리를 불안과 우울, 부와 권력에 대한 맹신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소림이 속해 있었던 모임이 하필 도스토옙스키 독서모임인 것은 아마도 도스토옙스키가 신(이라는 이름의 상위의 도덕 원칙)이 없을 때 인간이 얼마나 사악하고 위험한 존재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으로는 <죄와 벌>,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만 읽어봤는데, <재수사>에 언급된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5대 장편 소설(<백치>, <악령>, <미성년>)도 어서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