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루비
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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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루비>는 박연준 시인의 첫 소설이다. 시인이 소설을 쓰는 경우가 많은지 소설가가 시를 쓰는 경우가 많은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쓴 시인이 박연준 시인이라면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소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월모일>, <쓰는 기분> 등 그동안 박연준 시인이 발표한 산문집을 읽으며 그의 문장에 반했고, 그의 문장이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와 만날 때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혹은 일으키지 않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설에서도 '박연준다움', '박연준스러움'은 여전했다. 


소설의 배경은 1986년 서울의 변두리다. 일곱 살 여자 아이 여름은 엄마가 없다. 아빠는 있지만 밖으로만 나돌고, 여름을 맡은 고모는 피아노 학원 운영하랴 자기 딸 키우랴 바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의 인생에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하나는 아빠가 데려온 새엄마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에서 만난 첫 친구 루비다. 새엄마가 불편한 여름은 방과 후 대부분의 시간을 루비와 함께 보내고, 루비는 그런 여름을 조건 없이 받아준다. 여름은 그런 루비의 소중함을 모르고 점점 루비를 소홀히 대하고, 루비는 그런 여름에게 결국 이별을 고한다. 


일곱 살 여름이 자신을 사랑하지만 책임지지 않는 부모와 자신을 책임지고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 고모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열두 살 여름은 자신의 무관심과 불합리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사랑해 주는 루비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어떤 관계에서 더 많이 사랑받고 더 많이 상처 주는 것이 과연 이득일까. 남에게 더 많이 사랑받고 더 많이 상처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과연 성장일까. 무엇이 관계이고 성장인지도 모른 채 서투르게 관계 맺고 어설프게 성장이라는 의식을 치러야 했던 날들을 아프게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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