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을까. 팬데믹으로 인해 마스크 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 날들이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제라도 환경 파괴의 속도를 멈춰보겠다며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에 관심을 가지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일회용품을 흥청망청 사용하고 육식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환경과 사회, 경제 발전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각종 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아팠을 때, 마침 눈에 띈 소설이 박소영 장편소설 <스노볼>이었다. <스노볼>은 기후 변화로 인해 기존의 문명이 멸망한 후 평균 기온이 41도인 혹한기가 이어지고 있는 지구가 배경이다. 인류의 다수가 혹한기의 지역에서 평생 노동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선택받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돔으로 둘러쳐져 있어 항상 따뜻한 기온이 유지되는 '스노볼'에서 살 수 있다. 스노볼에 사는 사람들은 '액터' 아니면 '디렉터'로, '액터'인 사람들의 일상은 매일 매 순간 촬영되고 '디렉터'에 의해 드라마로 제작되어 바깥세상에 송출된다. 


주인공 '전초밤'은 스노볼의 바깥세상에서 인력 발전소 노동자로 살아온 부모 슬하에서 쌍둥이 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졸업 후 부모님을 따라서 인력 발전소 노동자가 되었지만, 언젠가 스노볼의 '디렉터'가 되어 자기만의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러던 어느 날, 초밤에게 스노볼의 스타 디렉터 '차설'이 찾아온다. 차설은 스노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액터인 '고해리'가 죽었는데 고해리와 초밤이 매우 닮았다며 고해리의 대역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 초밤은 고민 끝에 차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아무도 모르게 스노볼 안으로 들어간다. 


소설 초반에 인력 발전소 노동자로 살아가는 초밤의 일상이 펼쳐질 때만 해도 이 소설이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스노볼의 존재가 드러나고, 스노볼 안과 밖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게 되고부터는 이 소설이 예상외로 매우 현실 반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노볼 안에서 호의호식하는 대가로 일거수일투족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삶을 사는 액터들은 오늘날의 연예인 및 셀러브리티들과 비슷하다. 그들이 나오는 드라마, 예능을 보면서 그들이 먹고 입을 것들을 생산하다 늙어죽는 노동자들은 (나를 포함한) 일반 대중과 비슷하다. 


스노볼 안으로 들어간 초밤이 고해리인 척하면서 알게 되는 스노볼의 실체는 더욱 복잡하고 상상을 초월한다. 실체를 마주한 초밤이 현실에 순응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연대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두 여성인 것도 좋았다.) 설정이 워낙 매력적이고 신선해서 한 권으로 끝나는 게 아쉬웠는데, 작년 말에 후속편에 해당하는 2권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주문했다. 설정이 약간 비슷하지만(제목도) 작품의 결은 많이 다르다는 조예은 작가님의 소설 <스노볼 드라이브>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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