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음 -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
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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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음에도 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면, 쓰고 있음에도 쓰는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 아닌가 싶다. 소설가 박민정의 산문집 <잊지 않음>을 읽으며,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쓰고, 쓰는 문제를 걱정하면서도, 더 잘 쓰지 못함을, 더 제대로 쓰지 못함을 괴로워하는 작가의 모습을 여실히 보았다. 


이 책에 드러나는 박민정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설가가 되기 위해 태어나고, 소설가가 되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 같다. 그도 그럴 게, 박민정은 아주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소설을 썼으며, 대학에선 문예 창작을 전공했고, 모두가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그는 등단을 준비했다. 그리하여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나, 정식으로 소설가가 된 후에 체감한 '소설 쓰기의 무게'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무거워서, 오랫동안 고통받고 상처 입은 듯 보인다. 


그로 하여금 소설 쓰기를 어렵게 한 요인 중 하나는, 그가 소설가이기 이전에 여성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문단은 한국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남성이 권력을 차지하고 남성이 여론을 주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여성인 그의 글은 오독되고 오해받기 일쑤였다. 그가 직접 경험한 일에 관해 쓰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신경증 환자의 헛소리 취급했고, 그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문제의식을 느낀 일에 관해 쓰면 "네가 그 일에 관해 아냐!"라는 질책 어린 일갈이 돌아왔다. 그는 "허구를 만드는 테크니션"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가 만든 허구를 보지 않고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만 보았다. 


그토록 그를 괴롭게 하는 소설을,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뭘까. 평생 쓰는 일만을 꿈꾸었고 쓰는 법밖에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의 눈에 담기는 장면들과 그의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이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글을 쓰게 추동하는 것 같다. 어릴 적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보았던 집창촌의 풍경이라든가, 딸이라는 이유로 해외에 입양된 사촌 언니들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도 책상 앞에서 고뇌하고 있을 그의 모습이 선연하다. 부디 계속 감각하고, 감각한 것에 대해 써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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