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의 전문가들
김한민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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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페소아> 편을 읽고 김한민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페소아>와 닮았는데, 실제로 페소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포르투갈에서 생활한 적 있는 저자의 (경험담으로 짐작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이 책에는 '이방인'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누구나 태어난 곳이 있지만 모두가 그곳에서 평생 살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살 수 있지만 살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이 책의 화자는 전자인 동시에 후자이기도 한 것 같다.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고 어느 것에도 마음 줄 수 없어서 화자는 떠난다. 가장 애정하는 시인 페소아의 나라, 포르투갈로 떠난다. 포르투갈은 페소아의 조국이지만 나의 조국은 아니다. 비자가 만료되면 속절없이 떠나야 한다. 사람들과 말도 안 통하고 관습도 문화도 다르다.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책을 읽어도 떠올리는 생각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그것이 싫지 않다. 모두가 공감하는 건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저자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 비공감주의란 모두가 공감해야 할 만한 것 따윈 없다는 주의다. 무언가가 진짜일수록 공감하기 어렵다는 주의다. 공감하기 쉬울수록 가짜라는 주의다. 절대다수가 공감하는 것이 있다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위협을 느낀다. 특히 이런 시대의 대다수가 지지하는 사람, 생각, 물건, 발명품, 작품 등은 사기(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전제하는 주의)다. (95쪽) 


화자는 낯선 곳에서, 이방인들 사이에서만 편안하다. 불완전한 언어를 사용할 때 비로소 자유롭게 소통하는 기분을 느낀다. 때로는 외롭고 불안하지만, 어디든 외롭고 불안하다. 태어난 나라에서도, 익숙한 사람들 속에서도 우리는 언제든 외로워질 수 있고 불안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자발적으로 고독을 택하고 싶다. 안정을 버리고 싶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못해도, 누구에게나 이런 마음이 있지 않은가. 그런 마음이 여실히 그려져 있는 책이다. 단번에 이해되지는 않지만 자꾸만 곱씹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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