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없는 판타지 -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
오혜진 외 지음, 오혜진 기획 / 후마니타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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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라는 제목으로 2018년 1월부터 총 10회에 걸쳐 진행된 강좌와 이를 바탕으로 쓰인 10편의 원고에 더해 추가로 의뢰해 얻은 네 편의 글들을 함께 묶어서 만든 책이다. '문화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상업영화, TV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현대미술, 대중가요, 디지털게임, 순정만화, 로맨스 소설, 동인지, 팟캐스트, 소셜미디어, 대중잡지 등 다양한 문화 매체 및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한채윤 선생의 <'톰보이'와 '언니부대'의 퀴어링>이다. 'F(X)'의 멤버 엠버는 데뷔 당시부터 소년 같은 짧은 머리와 반바지 차림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엠버는 '여자답지 않다'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거나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질문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저자는 이 현상을 보면서 1980년대 '이선희 신드롬'을 떠올렸다. 엠버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 차림을 고수하는 여성 연예인은 과거에도 있었다. 이선희가 대표적이고, 이상은, 임주연, 그룹 '유피(UP)'의 이정희, 그룹 '카사 앤 노바' 등이 뒤를 이었다. 저자는 이런 스타일을 '보이시'나 '톰보이'로 규정하거나 '여자답지 않다'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실제로 이런 머리 모양과 옷차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을 지우는 행위이며, 성별 표현의 다양성을 제거하고 나아가 성적 욕망과 상상력을 통제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문학연구가 오혜진의 <할리퀸, 여성동아, 박완서>라는 글도 인상적이었다. 지금이야 문학 독자들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책은 남성의 전유물이며 여성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했을까. 저자는 1980년대 할리퀸 로맨스의 대유행과,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박완서가 주부 대상 잡지인 <여성동아>를 통해 등단한 사실을 지적하며, 실제로는 책 읽는 여성이 아주 많았지만 이것이 의도적으로 은폐되거나 여성들 스스로 자신이 열렬한 독자임을 모른 채 지나왔음을 설명한다. 이어지는 허윤의 <한없이 투명하지만은 않은 '블루'>, 이승희의 <'한국적 신파' 영화와 '막장' 드라마의 젠더'>도 흥미롭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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