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소설을 통해 몰랐던 역사를 알아간다.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헤르타 뮐러의 소설 <숨그네>를 읽으며 나는 그동안 존재조차 몰랐던 역사의 어두운 한 페이지를 알게 되었다. <숨그네>는 1945년 소련이 "나치에 의해 파괴된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이로 인해 루마니아에 살던 17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이들 중에는 헤르타 뮐러의 어머니와 레오폴드의 모델인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있었다. 


<숨그네>의 배경은 1945년의 루마니아. 17세 소년 레오폴드는 어느 날 갑자기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이때부터 시작된 고강도의 노동과 극한의 굶주림.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었지만, 레오폴드는 집을 떠나기 직전 할머니가 해준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을 부적처럼 여기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제목인 <숨그네>는 허공을 떠도는 그네처럼 삶과 죽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인간의 존재를 의미한다. 수용자들은 내일도 이렇게 굶주린 채로 일할 바에는 오늘 죽는 게 낫겠다고 한탄하지만, 막상 그들 중 누군가가 죽으면 시체의 옷을 챙기고 그의 몫으로 예정된 빵을 탐낸다. 그렇게 동료가 버린 삶으로 하루를 번다. 


현실이 아무리 비참해도 언젠가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레오폴드에게 가장 큰 시련을 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고향에 있는 레오폴드의 가족들이다. 레오폴드가 집을 비운 동안 가족들이 '새 식구'를 맞이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자, 레오폴드는 돌아갈 곳이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수용소에서 풀려난다 한들, 수용소 밖의 사람들은 수용소에서의 일에 관심도 없고 알아도 이해해 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회의를 품는다. 실제로 독일계 루마니아인들이 소련으로 강제 이송된 일은 <숨그네>가 발표되기 전까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무지와 무관심도 절망의 이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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