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 환원주의의 매혹과 두 문화의 만남
에릭 캔델 지음, 이한음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년 드레스 한 벌 때문에 전 세계 누리꾼들이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이른바 '흰색-금색 드레스 VS 파란색-검은색 드레스' 사건이다. 사건은 한 여성이 딸과 예비 사위에게 결혼식 때 입을 드레스 사진을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딸은 그 옷을 흰색 바탕에 금색 띠가 있는 드레스라고 본 반면, 예비 사위는 파란색 바탕에 검은 띠가 있는 드레스라고 봤다. 문제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자 소셜 미디어를 비롯한 온갖 곳에서 색깔 논쟁이 벌어졌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걸까. 


답은 뇌의 차이에 있다. 인간은 색깔을 휘도, 즉 망막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토대로 지각한다. 지각하는 빛의 양은 조명에 관한 경험과 기댓값의 영향을 받는다. 문제의 사진에서 드레스의 뒤편에는 환하게 밝혀진 조명이 있다. 이를 감안한 사람들은 드레스의 색상이 눈에 보이는 색상보다 진한 파란색-검은색이라고 본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늘 속에 있는 대상들은 사실 파란빛을 지나치게 많이 반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런 사람들은 드레스의 파란빛을 무시하고 흰색-금색이라고 판단한다. (참고로 정답은 파란색-검은색 드레스이다) 


이 사건은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뇌과학자인 에릭 캔델의 책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에도 나온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주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는 과학과 인간 경험의 특성을 연구하는 인문학의 접점으로서 뇌과학과 현대미술의 관련성을 소개한다. 참고로 여기서 현대미술이란 화가들의 관심이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구상미술에서 추상미술로 옮겨간 이후의 시기를 일컫는다. 


추상화가들은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그리는 대신, 점, 선, 면 등 본질적인 요소로 환원하여 시각적 재현을 하는 데 집중했다. 놀랍게도 이는 감상자의 머릿속에 작가가 의도한 것과 거의 비슷한 심상을 만들었는데, 이는 인간의 뇌의 경이로운 능력 덕분이다. 인간의 뇌는 바깥 세계로부터 불완전한 정보를 취해 그것을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완성하는 방식으로 학습 및 진화해 왔다. 따라서 미술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공하지 않아도, 일종의 연상적 회상을 촉발할 만한 '불꽃'이 될 인상을 제시함으로써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공한 것 또는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추상미술은 필연적으로 감상자의 참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를 영국의 유명한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감상자의 몫'이라는 용어로 정리했다. 감상자는 추상미술 작품을 볼 때 자신이 그동안 물리적 세계에서 경험한 것들과 연관 짓는다. 지금까지 알고 지낸 사람들, 살아온 환경, 그동안 마주쳤던 모든 미술 작품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러므로 감상자의 생애 경험 또는 지식수준에 따라서 추상미술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감동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책에는 뉴욕 추상미술학파의 출현을 비롯해 터너, 모네, 쇤베르크, 칸딘스키, 몬드리안, 데 쿠닝,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모리스 로이스, 앤디 워홀 등 추상미술의 발전을 이끈 작가들의 이력과 주요 작품 및 특징 등이 자세히 나온다. 이 책 덕분에 그동안 난해하게만 느꼈던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고, 아울러 앞으로 현대 미술 작품을 볼 때 어떤 식으로 인지하고 사고해야 하는지 - 감상자의 몫을 충분히 누릴 것! -에 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